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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휘슬러, 생애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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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 1834-1903) 생애

 

오늘은 음악과 미술을 사랑한 화가 휘슬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휘슬러는 유달리 그림에 흰색을 많이 사용하였는데요. 특히 휘슬러가 사랑했던 연백색을 나타내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던 납으로 인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순수한 백색을 사랑했던 화가이자 미술에 음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작품세계를 지닌 화가, 휘슬러에 대해 알아볼까요?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는 미술사에 나타나는 몇 안 되는 미국 태생의 화가입니다. 휘슬러는 드물게도 자신의 이름에 어머니의 처녀 때 성인 맥닐을 넣었는데요.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표현한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어머니를 향한 애정과 존경은 작품 화가의 어머니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휘슬러가 뉴욕 첼시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여 그린 작품인데요. 늙은 어머니가 오랜 시간 서있을 것을 걱정했던 휘슬러는 모델의 포즈를 앉은 자세로 구성하여 어머니를 배려했다고 합니다.

휘슬러의 어머니그림을 보면 단정하고 엄격한 느낌을 주는 회색과 검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림 속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과 동일하다고 느끼면서 겉보기에는 엄격해 보이지만 내면에 자리한 인고의 세월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칭하곤 했습니다.

휘슬러는 유년시절을 러시아에서 보냈으며, 귀국 후 워싱턴에서 그림공부를 하다가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는데요. 1851년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였을 당시 휘슬러는 상당히 우수한 학생이었고 특히 미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휘슬러는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낮은 화학점수를 받았고 그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1855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향한 휘슬러는 왕립미술특수학교와 그레이르 아카데미에서 그림 공부를 하였으며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프랑스로 간 휘슬러는 마르크 샤를 가브리엘 끌레르를 스승으로 섬겼으며, 루브르 박물관의 고전 명작들을 모사하고 습작하는 데 몰두하였습니다. 이후 친구의 소개로 사실주의의 거장 귀스타브 쿠르베를 만난 휘슬러는 그 후로 쿠르베와 오랜 시간 동안 친분을 유지하면서 그림과 인생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휘슬러는 마네, 모네 등 여러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점차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소개한 다양한 작품의 제목이 기억나시나요? 휘슬러의 작품 이름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혹시 발견하셨나요? 휘슬러는 작품에 제목을 붙일 때 색과 음악을 사용하여 그림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 많은데요. 이 부분에서 휘슬러의 독특한 그림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휘슬러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였고 회화의 주제 묘사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였는데요. 그림 구성상의 요소를 추상적으로 다루면서 작품의 주제를 배제하고자 했던 자신의 그림철학과 추상적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음악이 공통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하여 #4 편곡, 교향곡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특히 휘슬로는 색채의 조화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기도 하였습니다. 회화가 보이는 것의 시라면, 음악은 들리는 것의 시이다. 소리 또는 색의 조화 없이는 그 어떤 작품의 주제도 없다. 주로 파리와 런던에서 활동했던 휘슬러는 런던 사교계의 주목받는 명사였는데요. 뛰어난 수완과 매너리즘적 성향, 장식적인 옷을 즐겨 입으며 멋을 내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타고난 멋쟁이였습니다.

 

휘슬러 가 그린 자화상을 봐도 그가 멋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으며, 휘슬러에게 있어 화려한 옷차림은 자신의 예술성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휘슬러의 미적 감각은 서명에서도 드러나는데요. 휘슬러는 자신을 가냘프고 우아한 나비로 형상화하고자 하였습니다. 1860년대 이전 작품을 보면 필기체로 서명을 하였지만, 1860년대 이후에는 서명 대신 자신의 모든 작품에 나비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휘슬러는 문학과 음악의 추상성을 사랑하여 교향곡이나 편곡 같은 음악과 관련한 용어를 작품의 제목으로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평론가들이 처음부터 회화와 음악의 비유를 쉽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작품 속에 흰색이 아닌 다른 색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작품의 이름처럼 흰색의 심포니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는데요. 그 말은 들은 휘슬러는 평론가에게 F장조의 심포니가 다른 음조는 하나도 없이 F, F, F만 반복되어야 하냐고 되물으면서 재치 있게 F로 시작하는 이 바보야! 를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휘슬러는 자신의 미술론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느 평론가 못지않은 입담과 필력으로 자신의 미술론을 피력하곤 했습니다. 이후 휘슬러는 1886년 영국미술가협회 회장, 1898년 국제미술가협회 회장으로 당선되는 등 미술계와 미학의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작품활동

하얀 베일로 치명적 독성을 가린 납

휘슬러가 활동했을 당시 가장 유행했던 색은 바로 흰색이었는데요. 특히 그 중에서도 휘슬러는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연백색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깨끗하면서도 청순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연백색은 휘슬러의 뮤즈를 모델로 한 작품 흰색 교향곡시리즈에서 매력을 더욱 드러내는데요. 지금부터 아름다운 휘슬러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림 속 여주인공과의 숨겨진 스토리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흰색 교향곡 1번입니다. 1862년 휘슬러가 흰색 교향곡 1번을 발표했을 때는 이미 2년 전에 윌키 콜린스가 쓴 『흰 옷을 입은 여인』이라는 괴기소설이 출판되어 있었는데요. 휘슬러가 소설과 비슷하게 그림 제목을 정한 것은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소설과 그림의 제목이 비슷하여 사람들은 그림 속 여성이 소설의 주인공과 동일한 인물인지 헷갈리기 시작하였고, 소설과 그림은 함께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흰색옷과 흰색 가방, 흰색 구두 등 흰색이면 무엇이든지 유행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네요. 휘슬러의 시대 뿐만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에도 배경을 모두 하얀색으로 칠하는 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연백색은 주로 캔버스에 광택을 내기 위한 애벌칠의 용도로 사용되는 색이었는데요. 휘슬러는 이례적으로 그림 전체에 흰색을 사용한 화가였습니다. 그림의 배경이 된 커튼에 사용된 흰색과 , 여성이 입고 있는 드레스의 소매 부분, 그리고 드레스의 가슴과 치마 밑단 부분에 사용된 흰색이 각각 다른 농도와 빛깔로 칠해져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처럼 휘슬러는 흰색 교향곡 1번 작품에서 단순히 흰색을 칠한 것이 아닌 백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색감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휘슬러는 그림 속 여인을 청순하고 순결한 분위기로 표현하였는데요. 이 모습과 대비가 되는 부분은 그림 속 여인의 발 밑의 그려진 사나운 동물의 얼굴의 모피입니다. 이것은 그녀에게 내재되어 있는 정열과 동물적 야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흰색 교향곡 1번은 당시 흰색 신드롬에 편승하는 그림으로 간주되어 비평가들 사이에서 혹평을 받았으며, 영국 왕립 아카데미 전은 물론 파리 살롱전에서도 거부되었지만 훗날 누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델의 몸매와 속마음까지 드러내는 듯한 투명한 분위기를 잔잔하고 깊게 표현한 걸작으로서 재평가받았습니다. 다음으로 흰색 교향곡 2번에 대해 살펴볼까요? 이 그림의 주인공인 여성은 흰색 교향곡 1번과 동일한 여성입니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인물이 화면 왼쪽에 치우쳐서 그려져 있으나 오른쪽으로 팔을 뻗고 있어, 여인이 거울을 보며 서있는 정적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거울 속에는 여인의 얼굴이 거울에 비치고 있는데요.

당시에는 거울이 외면 뿐만 아니라 내면을 드러낸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거울 속 여인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를 향한 휘슬러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여성이 입은 치마를 볼까요? 휘슬러의 시대에는 여성들이 대개 구조물을 넣은 부풀려진 치마를 입었다고 하는데요. 그림 속 여인이 입은 치마는 당시로 따지면 거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일부사람들에게서는 천박한 모습이라는 질타를 받기도 하였으나, 여성의 순수함과 여성미를 보여준 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그림 속에서 사용된 다양한 소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흰색 교향곡 2번의 그림에서는 동양적인 성격의 다양한 사물들이 그림 속에 나타나 있는데요. 여인이 손에 들고 있는 일본풍의 그림의 부채와 벽난로 위에 놓여져 있는 일본식 꽃병, 바닥에 피어있는 벚꽃 등의 소품을 사용하여 그 당시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본 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흰색 교향곡 1번과 2번의 사진을 살펴보았는데요. 잠시 휘슬러와 그림 속 주인공의 스토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교향곡 1번과 2번의 모델이었던 아름다운 여인은 조라고 불린 아일랜드 태생의 조안나 히퍼넌입니다. 그림의 모델이 된 시점은 그녀가 19살 때 라고 하는데요. 집안이 무척이나 가난했던 그녀는 휘슬러의 정부 겸 모델이 되었습니다. 조안나는 휘슬러의 정식 부인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애버트 부인이라고 칭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도 휘슬러를 사위처럼 대했다고 합니다. 조안나의 모습은 붉은 머리칼이 특히 아름다웠고 몸매에 기품이 있었으며, 남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조안나에게 한 눈에 반한 휘슬러는 그녀를 굉장히 아꼈으며 그녀의 모습 속에서 순수하고 청 순한 이미지를 발견하여 작품에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휘슬러는 조안나를 존경했던 선배 화가 쿠르베에게 자랑을 곁들여 소개하였는데요. 쿠르베도 그녀에게 끌린 것인지 조안나를 소개받은 후 그녀를 모델로 한 잠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작품으로 인해 휘슬러와 조안나가 결별을 하게 되는데요. 평소에도 모델 일을 즐겼던 조안나는 작품의 주제가 당시 매우 파격적이었던 레즈비언의 사랑이자 누드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제는 이 작품이 나온 시기가 휘슬러가 잠시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느라 집을 비운 사이었다는 것입니다. 연인이었던 그녀가 떨어져있던 사이에 자신도 그리지 않은 누드화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은 휘슬러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조안나와의 관계에는 심각한 금이 갔으며 결국 두 사람은 머지않아 결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휘슬러, 흰색 교향곡 3번, 1867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흰색 교향곡 3번 입니다. 조안나와 결별 이후 앞선 흰색 교향곡 1번, 2번과는 달리 다른 여성을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렸는데요. 이 작품에서도 역시 연백색을 넓은 면에 사용하였습니다.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는 전체적인 흰색 배경에 대비되는 여성들의 아름다운 오렌지 빛 머리카락과 부채가 그림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카펫에는 녹색을 사용하여 자칫 가벼울 수 있는 화면에 무게를 더하였습니다. 화면을 가로로 나누고 있는 긴 의자의 수평선들은 의자에 걸터앉은 여인들이 만들어내는 곡선으로 분할되어는데요. 즉, 여인들은 휴식을 위해서가 아닌 화면의 균형을 잡아줄 세로 곡선을 만들기 위해 편안하지 않은 과장된 포즈로 앉아있는 셈입니다.

화가의 목숨까지 앗아간 순결의 색

앞서 알아본 것처럼 휘슬러는 그림에 연백색을 많이 사용한 화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깨끗하고 아름다울 것만 같은 연백색에는 사실 독성이 매우 강한 납이 함유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납은 그림 뿐만 아니라 납이 함유된 물감을 사용한 화가에게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납은 주로 미세 분진에 흡착되기 때문에 사람의 호흡기로 직접 노출되며 그 외에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섭취하면서 소화기를 통해 흡수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체내 속으로 들어온 납은 대부분이 오랜 기간 뼈 속에 축적되었다가 아주 서서히 혈액으로 녹아 나오게 되는데요. 뼈를 포함한 신체 조직에 납이 축적되는 것을 방치하게 되면 조혈기관의 기능 장애로 빈혈, 신장 기능 및 생식기능 장애 등의 심각한 중독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일 뇌에 축적되었을 경우에는 사지마비, 실명, 정신장애, 기억력 손상 등의 심각한 뇌질환을 일으키게 되며 그중 25%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납은 인류가 가장 먼저 제련하여 사용한 금속 중 하나로 미술에 있어서는 도기에 유약을 바르거나 색칠하는데 사용되었는데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은을 제련할 때 많은 양의 납을 부산물로 얻었으며, 여기서 연백을 만들어 페인트 안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연백은 휘슬러는 즐겨 사용하던 물질이었는데요. 연백이 황과 반응하면 검은색의 황화납이 되는데 이때 흰색이 검게 변색할 위험이 있습니다.

휘슬러의 작품 흰색 교향곡 1번의 바닥 부분을 보면 이미 많은 부분에 검은 변색과 손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피 밑 부분에 검게 색이 변해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휘슬러의 또 다른 작품인검정과 금색의 광상곡 : 떨어지는 불꽃또한 현재 많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처럼 연백의 납 성분은 사람의 신체에도 매우 강한 독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독이 되었습니다. 연백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요. 은처럼 빛이 나는 특성이 있어 실버 화이트, 작은 조각처럼 번쩍인다고 하여 플레이크 화이트라고도 불립니다. 휘슬러는 넓은 면에 이 색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림을 바로 앞에서 감상할 경우, 창백한 빛이 아른거리는 묘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록 휘슬러는 평생을 사랑했던 연백색의 아름다움에 숨겨진 납 중독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였으나, 휘슬러가 남긴 눈부신 백색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백색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인물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색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휘슬러의 그림들은 오늘날 미술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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