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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코시모, 생애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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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 1462~1521) 생애

코시모, <프로크리스의  죽음>, 1510년경, 캔버스에 유채, 188x6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프로그리스의 죽음> 그림 속 남자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지시지 않으신가요?
상체는 인간이지만 귀가 길고 뾰족하며 하체는 털이 많이 나있고 심지어 종아리와 발은 염소처럼 생겼습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이 남자는 바로 그리스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판’입니다. 상체는 인간의 모습이며 하체는 염소의 모습을 
한 장난꾸러기 목신 판은 환상과 신화를 주로 다뤘던 오늘의 주인공의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화가는 당시 르네상스 시대에서는 드물게 기괴한 형상을 사용하여 작품속에서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화가의 기묘한 작품세계로 들어가볼 까요?

 

오늘의 주인공은 기발한 정신의 소유자 화가 코시모입니다.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화가 코시모의 본 명은 원래 피에로 디 로렌초였는데요, 코시모가 존경했던 스승인 ‘코 시모 로셀리’의 이름을 따 필명을 ‘피에로 디 코시모’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코시모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필리포 리피, 루카 시뇨렐리 및 플랑드 르 회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지냈다고 전해집니다.코시모는 그림의 주제를 고대 설화에서 착안하였으며 기괴한 형상을 사용하였고, 동시에 곡선이나 강한 색채를 편애하였습니다. 작품 속 여신이 걸치고 있는 망토 역시 강렬한 붉은 빛을 사용하여 시선을 집 중시키고 있으며, 망토 주름의 곡선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듯이 표현 되어 있습니다. 또한 코시모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보기 드물게 초현실주의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 속에 환상 이 풍부한 세계를 창조한 화가였는데요, 이 작품의 하단에서도 강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인어를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동물을 자주 사용하였다는 것인데요. 이 그림에서는 날개가 달린 여인 옆에 두 발을 든 채 서있는 하얀색 말을 그려 넣었습니다.

 

2. 기발한 정신의 소유자, 코시모

코시모, <프란체스코 감바르티의 초상화>, 1510년경, 캔버스에 유채, 188x6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코시모, <숲  속의  화재>, 1505년경, 패널에 유채, 71x202cm, 영국 옥스퍼드 애슈몰린 미술관

 

코시모는 초상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요, 그림 속 노인의 이 마에 돋아난 힘줄과 피부의 주름살이 놀랍게도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 으며, 세밀하고 정교한 명암을 넣어 인물의 모습에 입체감을 표현하 였습니다.유명한 전기 작가 조르조 바사리는 『미술가 열전』에서 코시모를 “아 주 특별하고 기발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묘사하며 당시의 가장 흥미 롭고 별난 인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바사리는 코시모의 유별난 기질을 잘 알려주는 몇 가지의 재미있는 일화를 설명하였는데 요, 코시모는 매우 신경질적이어서 파리와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평 소에 굉장히 짜증을 냈고,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교를 끓이는 불에 달걀을 함께 삶아서 주식으로 먹었던 유별난 식 성을 지녔는데요, 삶은 달걀 외에 다른 음식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고 합니다. 또한 은둔자처럼 항상 고독을 필요로 했으며 카니발 때 매 우 위험하고 별난 발명을 했다는 등의 독특한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또한 역사가 파노프스키는 코시모에 대해 “그의 작품들이 명작이라 
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상하고 꿈꾸는 듯한 시적 황홀함의 신비한 유혹으로 엄청난 매력을 지녔다.”라고 설명하였는데요, 코시모의 독 특한 성격만큼 그림 또한 묘한 매력이 넘쳤던 모양입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코시모의 작품을 감상해보면서 그림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볼까요? 코시모는 풍경을 뛰어나게 표현한 화가였는데요, 빛과 공기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처리하였으며 사실적 으로 묘사한 동물들을 그림에 자주 그려 넣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숲 속의 화재〉는 이러한 코시모의 역량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인데요, 피어 오르고 있는 검은 연기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 떼, 점점 가까 워져 오는 불빛을 통해 동물들의 서식지가 위험에 처했음을 보여주며 화재로부터 서둘러 달아나고 있는 각양각색의 동물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동물들의 표정과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몸짓에서 숲을 서둘러 떠나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느껴집니다.

 

3. 위대한  조각가이자 화가, 미켈란젤로

코시모, <프로크리스의  죽음>, 1510년경, 캔버스에 유채, 188x6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코시모, <불카누스와 아이올로스>, 1490년경, 캔버스에 유채 템페라, 155.5×166.5cm, 캐나다 내셔널 갤러리

코시모, <꿀의 발견>, 1499년경, 79.2×128.5cm, 우스터 미술관

코시모, <프로크리스의  죽음>, 1510년경, 캔버스에 유채, 188x6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지금 여러분이 감상하고 계신 〈켄타우로스족과 라피테스족의 전투〉는 신화를 그렸던 코시모의 다른 작 품들처럼 기괴하고 낭만적인 환상을 자아내는 원숙한 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켄타우로스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일화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언덕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장면 들을 굉장히 역동적으로 나타내었는데요, 싸움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라피테스족의 왕이었 던 페이리토스는 친척인 켄타우로스들을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였는데, 한 켄타우로스가 심술을 부 리기 시작하면서 행복했던 결혼식이 망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과 함께 춤을 추자며 신부를 끌고 가기 시작한 것이었죠. 그 모습을 보고 몹시 화가 났던 왕은 자신의 신부에게서 손을 떼라며 화를 내기 시작하였는데요, 점차 싸움이 커지게 되었고 이내 켄타우로스족과 라피테스족 간의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다음 작품은 불과 도구의 사용법을 배우고 있는 초기 인간의 모습을 그린 〈불카누스와 아이올로스〉와 꿀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꿀의 발견〉입니다. 이 두 작품 속에 나타난 명확한 인물묘사와 광택 있는 피부묘사는 화가 루카 시뇨렐리에 대한 코시모의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코시모는 시뇨렐리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유화기법을 만 들었습니다. 중앙 원에 자리한 시뇨렐리의 작품과 양쪽에 위치한 코시모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시뇨렐리 보다 코시모의 그림의 형태가 좀 더 부드러우며, 빛을 따뜻한 느낌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코시모의 초상화 중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 〈여인의 초상〉을 감상해볼까요? 이 초상화는 줄리아노 데이 메디치의 미망인인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흉상을 그린 기념 초상화입니다. 우선 여인의 옆 모습을 보면 율동적인 윤곽선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데요, 얼굴 바로 뒤에 자리한 어두운 배경에 의해 윤곽선이 더욱 강조 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여성의 머리 카락인데요,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표현된 머리카락과 땋은 모양을 낸 화려한 머리장식이 눈에 띕니다. 마 지막으로 여성에 목에 걸려있는 두 마리의 뱀이 나선형으로 감겨 있는 모양의 금 목걸이가 보이는데요, 폐 결핵을 앓고 있던 여인이 사망할 것임을 암시하는 상징이라는 추측 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코시모는 피렌체 미술 발전에 지속적인 영향을 준 화가로써, 코시모의 풍경화 기법과, 기괴하고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표현법의 종교화와 신화화는 사실상 독보적이었으며 코시모를 추종하는 수많은 미술가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4. 연금술로 화학의  반응을  그리다

코시모, <프로크리스의  죽음>, 1510년경, 캔버스에 유채, 188x6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파올로 베로네세, <프로크리스의 죽음>, 1580~1582년경, 캔버스에 유채, 162x185cm


여러분 혹시 연금술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물질의 속성을 변화시켜 금, 은과 같은 보석을 만들 수 있다 는 이 흥미로운 가설은 여러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연금술은 중세기의 전 유럽에서 성행했는데요 예술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 당 등 중세의 건축 양식과 뒤러, 램브란트 등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연금술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오늘의 주인공 코시모 역시 연금술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특히 코시모의 대표작 〈프로크리스의 죽음〉속에는 연금술과 관련된 은밀한 상징들이 숨겨져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한 연금술의 상징들을 찾아볼까요?코시모의 대표작인 〈프로크리스의 죽음〉은 프로크리스와 케팔로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 입니다. 그림의 구성을 살펴보면 반라의 여인이 화면 가운데 누워 있고 누워있는 여인의 왼쪽에는 반인 반수의 목신 ’판’이 반대편에는 큰 사냥개가 여인을 바라보고 있으며 저 멀리 넓은 들판과 바다가 보입니 다. 이 묘한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에 숨어 있는 많은 상징과, 제목이 말하는 신화의 배경을 알 아야 하는데요, 우선 신화의 배경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아르테미스 여신은 아름다운 처녀 프로크리스를 총애하였는데요, 프로크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냥개와 절대 빗나가지 않는 창을 선물하였습니다. 프로크리스는 청년 케팔로스를 사랑하여 그와 결혼 하였는데요,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받은 사냥개와 창을 케팔로스에게 결혼 선물로 주게 됩니다.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부부에게 불행이 닥치고 맙니다. 사냥을 좋아했던 케팔로스는 이른 아침에 사냥을 떠났는데요,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그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 케팔로스를 납치하고 말 았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유혹에도 케팔로스가 아내를 끝내 배신하지 않자 에오스는 아내에게 돌아가면 분명히 불행해 질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케팔로스를 놓아주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 수 없던 프 로크리스는 오해로 인해 질투심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결국 남편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케팔로스가 쉬는 시간마다 습관처럼 말하 던 “어서 오라, 아우라!”를 우연히 듣게 된 마을의 여인이 케팔로스가 다른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 게 됩니다. 이 소문을 들은 프로크리스는 몰래 남편의 뒤 를 밟기 시작하였는데요, 사냥을 마치고 숲에 누워 땀을 식히며 “어서 오라, 아우라!” 하고 노래를 부르던 케팔라 소를 본 프로크리스는 남편이 다른 애인을 부르는 것이라 고 확신하였고 이내 낙담하여 흐느끼며 울기 시작하였습 니다. 그때, 풀 숲에서 프로크리스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 를 들은 케팔로스는 사냥감의 기척인 줄 알고 재빨리 창을 던지고 말았는데요, 사냥감이 잡혔는지 확인해보러 달려 갔더니 그 곳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가 창에 찔려 누워 있었습니다.
프로크리스는 죽어가면서 ‘아우라’와 사랑에 빠진 남편을 원망하며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 여자와 만나 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는데요, 그제서야 케팔로스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게 되었으나 이미 사랑하는 아 내 프로크리스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우라’ 는 그리스어로 바람이라는 뜻이었고 케팔로스 가 했던 말은 “바람아, 불어라!”는 말을 시적으로 표현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것이 바로 케팔로스와 프 로크리스의 신화의 내용이었는데요, 코시모는 창에 맞아 죽어가는 프로크리스의 마지막 장면을 그림으 로 표현하였습니다.
신화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지금부터는 그림에 가득 차있는 연금술의 상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보셨던 신화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판’이 프로크리스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판은 코 시모가 연금술의 상징으로 그려 넣은 장치로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지닙니다. 태초의 근원을 찾는 신비 로운 학문인 연금술에 빠진 코시모는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야생의 모습에 매우 강하게 끌렸는데요, 염 소의 다리와 함께 염소의 귀와 이마에 뿔이 나있는 매우 야생적인 모습의 판을 연금술의 상징으로서 작 품 속에 그려 넣은 것입니다. 이번엔 프로크리스를 볼까요? 창을 맞고 죽어 가는 프로크리스의 육체는 황금과 붉은 천으로 감싸여 있는데요, 붉고 뜨거운 ‘현자의 돌’을 상징한 것입니다. 프로크리스의 어깨 위에서는 새로운 생명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요. 이 나무는 ‘현자의 돌’에 의하여 잉태된 생명을 상징합 니다.

케팔로스의 사냥개는 그림의 두 군데에서 나타나는데요, 프로크리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관조적 태도로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큰 개 한 마리와 배경 속에서 흰 개와 검은 개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개입니다. 이 두 마리의 사냥개는 바로 위대한 연금술사 헤르메스를 뜻하는데요, 헤르메스는 이승 과 내세를 오가는 죽음의 왕국의 안내자이며 연금술의 위대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르메스를 사냥개로 표현한 이 작품은 미술에서 개를 의인화한 최초의 예로 평가되어 집니다.이번엔 배경을 관찰해 볼까요? 우선 배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 마리의 개인데요, 갈색 개는 방금 알아봤던 것처럼 헤르메스를 상징하며 흰 개와 검은 개는 화학에서 대립되는 상태인 휘발성체와 고체를 나타냅니다. 화학 뿐만 아니라 연금술의 모든 반응은 이 두 상태 사이의 변환과 대립으로 나타나지는데 요, 이러한 화학반응을 검은 개와 흰 개로 상징하였고, 그 모습을 연금술사를 상징하는 사냥개가 지켜보 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세 마리의 개 옆에서 물에 떠있는 펠리컨과 목이 긴 새들은 연금술사 들이 사용하는 유리병을 나타내는데요, 병 안에서 물질들이 반응하여 승화하여 기체가 되는 과정을 날 아가는 새들로 표현하였습니다. 동물들을 연금술의 상징으로 활용하여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일련의 과 정을 표현해낸 코시모의 상상력이 정말 놀랍게 느껴집니다.코시모에게 연금술은 비싼 금을 만드는 욕심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정신을 지배할 권위를 가진 ‘신의 보편 정신’으로서 연금술의 부흥을 간절히 원하였고, 한편으로는 그런 연금술이 사람들의 몰지각 으로 쓰러져가는 슬픔을 담아 〈프로크리스의 죽음〉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즉, 이 그림 한 편의 ‘연금술의 정의’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요, 도덕심 없는 음산한 도시 풍경, 원시적 근원으로의 목신, 휘발 성체와 고체의 반응을 주의 깊게 감시하는 충직한 사냥개로 나타난 연금술사, 수많은 유리병으로 쉼 없 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연금술사의 실험실, 붉고 뜨거운 황금을 만들 수 있는 ‘현자의 돌’과 연금술의 죽 음, 그 위에 자라는 생명의 나무 등으로 연금술이 단순히 실패한 욕심꾼들의 놀이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 타내고 있습니다.

 

 

5. 철학과  신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인을  발견한  연금술사

화학자들에게 연금술은 아주 친숙한 단어이지만 ‘연금술’을 정확히 이 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과수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 두었다고 유언한 아버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금을 찾기 위해 온 밭을 헤쳐 보았지만 어디서도 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과나무 뿌리를 파헤쳐 놓아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금을 만들고자 했던 연금술사들은 금을 만드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유용한 기구와 실험 방법과 신물질을 다수 발명하여 인간에게 큰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베이컨의 말처럼 연금술 은 단순히 우연한 부산물을 얻게 된 실패한 사기술에 지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연금술에서 얻게 된 부산물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함께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금술사들은 온 우주와 만물을 변화시키고 운행하는 어떤 원동력이 있는데 그것이 ‘보편 정신’ 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어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며 생명의 토대가 된 다고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연금술은 기술이나 과학을 넘어서 철학이 고 신학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보편 정신이 바로 ‘신의 정신’이며 이것을 구체화, 형상화한 것이 ‘현자의 돌’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의 정신보다 금을 만들어주고 정신과 육체의 만병을 치료해준다는 불 
사의 명약인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해 몰두하였습니다. 특히 독일 출신의 연금술사 해닝 브란트와 쿤켈은 근대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지목되는데요, 이 두 명의 연금술사의 공통점은 바로 현자의 돌을 만 드는 과정 속에서 본래 목적이었던 금 대신 ‘인’이라고 하는 원소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인은 주기율표 15족으로 질소 바로 아래에 있는 비금속 원소으로서, 원소기호는 ‘phosphorus’의 이니셜인 ‘P’, 원소 번호는 15번입니다. phosphorus는 그리스 신화에서 금성을 가리키는데요, 금성은 과거에 빛을 가져 오는 행성이라 하여 ‘샛별’이라 불린 행성입니다. 그렇다면 인은 어째서 금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요? 그 비밀은 연금술사 해닝 브란트의 실험 속에 있습니다.브란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자의 돌을 찾는데 몰두하던 연금술사였습니다. 특히 브란트는 인 간의 소변에서 인을 추출해 내는 기이한 실험과정으로 눈길을 끌었는데요, 브란트가 어떤 연유에서 소 변에서 현자의 돌을 찾으려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지만 오랜 실험 과정에서 현자의 돌을 얻는데 5000리터의 소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뒤 닥치는 대로 소변을 모으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의 소변을 수집한 브란트는 모은 소변을 썩히기 시작하였는데요, 썩힌 소변을 다시 팔 팔 끓이는 실험 과정을 통해 흰색 농축액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지만 불행히도 이 농축액은 ‘현자의 돌’ 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변에서 추출된 흰색 농축액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묘한 특징을 띄었는데요, 브란트는 이 영묘한 물질에 ‘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모든 병을 낫게 하는 만병통치약이라 선전하며 곧바로 사업에 착수하였습니다. 하지만 빛을 내는 특성과 함께 유독성을 지닌 인이 만병통치 약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브란트는 인이라는 원소를 발 견하는 엄청난 일을 해냈지만 그것의 과학적 가치와 유용성까지는 이끌어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의 가치를 증폭시킨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 사람은 바 로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보일입니다. 보일은 소변 농축물 에 있는 인산염이 모래와 탄소와 반응해 인을 생성해 낸다는 원리를 알아냈으며 인에서 산화인과 인산을 만드는 방법도 찾아냈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나무 조각 끝에 황을 붙여 점화시키는데 인을 사용하 여 인류 최초로 성냥을 개발하였습니다. 이처럼 특유의 점화성을 지 닌 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당시 연막탄의 재료로 활용되거나 나치 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화염병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인은 소변 말고도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뼈나 식물, 광물 등에 
서도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이 출토되는 인회석 을 통해서 다량의 인을 추출하고 있습니다.이후 인은 산업화를 통해 강철과 인청동 제조는 물론, 구리의 야금 과 정에서 불순물인 산소를 제거하는데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 이 밝혀졌습니다. 비록 인이 많은 연금술사들이 찾던 현자의 돌은 아 니었지만 연금술로 인해 세상에 나오게 된 인은 현재까지도 여러 공업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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