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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ART-에드워드 호퍼, 생애와 작품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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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생애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미국 도시의 고독한 이미지를 무심하고 무표 정한 방식으로 그려내며 가장 미국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화가입니다. 호퍼가 공간과 빛으로 빚어내는 풍경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는데요. 작품 속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인물들에게서 특유의 쓸쓸함과 고독의 정서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7월 22일, 미국 뉴욕주 남동부에 있는 소도 시 나이액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퍼의 아버지 가문은 네덜란드의 부유한 상인 집안이었는데, 호퍼의 아버지는 선대만큼 장사 수완이 좋지는 못했습니다. 호퍼는 어린 시절부터 스케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부모는 아들이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호퍼의 어머니는 호퍼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울 수 있도록 삽화가 많이 그려진 책을 여 러 권 선물했으며, 이 시기에 호퍼가 그린 스케치들을 잘 보관해두었습니다. 1899년 가을에 나이액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호퍼는 뉴욕 일러스 트레이팅 학교에서 정식교육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호퍼의 부모는 삶을 예술에 바치겠다는 아들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고,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미술시장에 스케치를 팔아볼 것을 권하였습니다. 일러스트레이팅 학교에서 공부하던 호퍼는 부모에게 상업미술이 아닌 순수미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로 전학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고, 1900년 가을에 뉴욕미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호퍼는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윌리엄 메릿 체이스와 케네스 헤이스 밀러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특히 체이스는 학생들에게 개성을 기르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시각에 맞게 표현할 것을 강조하였 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이룬 것을 모방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하면서 유명한 미술작품에서 모 티프를 빌려다가 활용하는 것을 독려하였습니다. 이러한 체이스의 가르침에 따라 호퍼는 른 미술가들 의 작품을 많이 스케치하면서 폭넓은 관심과 학생답고 허심탄회환 호기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작품 전체보다는 세부적인 것을 자주 스케치하면서 자신의 관심을 끄는 부분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뉴욕미술학교에서 3학년이 된 호퍼는 미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새로운 정의를 내려 준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화가 로버트 헨리였습니다. 유럽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헨리는 특히 에두아르 마네를 존경했는데요. 그는 마네를 연상하게 하는 어두운 색을 주로 사용하면서 “마네의 붓놀림은 풍부하고 우아한 연속성을 보여주며 튀거나 얄팍하지 않다.”라고 찬양했습니다. 또한 그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한 가지 양식을 설명하는 대신, 주변의 삶을 관찰하고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라고 가르 쳤습니다. 그리고 미술은 성격과 감정이 소통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림이나 드로잉 실력보다는 미 학적 철학을 중시하였습니다. 호퍼는 스승으로서 헨리를 높이 평가했으며, 헨리는 호퍼의 학창 시절 작 품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호퍼는 1906년에 뉴욕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 벨기 에 등 여행한 후 호퍼는 오랫동안 파리에 체류하였는데요. 파리에서 만난 학교동창 패트릭 헨리 브루 스는 호퍼에게 알프레드 슬레, 카미유 피사로,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의 작품을 보여주며 인상주의 회 화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와 함께 파리의 갤러리와 살롱전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본 호 퍼는 그 영향을 받아 팔레트 색채가 밝아졌을 뿐 아니라 더 짧고 끊어진 붓질을 보여주었습니다. 훗날 호퍼는 파리 체류 당시를 “예전에 보던 것과 빛이 매우 다르게 보였다. 그늘조차도 빛나고 있으며 모든 사물이 빛을 반영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리 밑 그늘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하였 습니다.
 

작품활동

미국적 색채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1914년, 캔버스에 유채, 91.4x182.9cm, 휘트니 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밤의 그림자>, 1921년, 에칭, 17.4x20.8cm, 휘트니 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글로스터 항구에 있는 집>, 1924년, 수채화, 33.9x49.6cm, 보스턴 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그리고 있는 조>, 1936년, 캔버스에 유채, 45.7x40.6cm, 휘트니 미술관
1907년 가을,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공황은 호퍼에게 상서롭지 못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가는 폭락하고 파산이 늘어나는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어느 갤러리나 후원자도 미지의 화가인 호퍼에게 기대를 걸지 않았습니다. 호퍼에게 대안은 너무나도 분명했습니다. 이제 미술계에서 호퍼가 살아남는 길은 그 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상업미술에 의존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호퍼는 상업미술의 길을 찾아서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1908년에 뉴욕에 정착한 호퍼는 1909년과 1910년에 떠난 유럽여행을 제외하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광고 대행사와 잡지사의 삽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회화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시간의 여유가 생길 때마다 틈틈이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한편, 1913년 2월, 미국 미술사에서 하나의 전기가 되는 전시회가 개 최되었습니다. 뉴욕 69 연대 병기고에서 열렸기 때문에 ‘아모리 쇼’라고 알려진 국제현대미술전은 이후 시카고와 보스턴으로 옮겨 전시되며 가 는 곳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이 전시회는 유럽의 모더니즘과 추상미술이 미국 땅에 처음으로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모 리 쇼에 유화 〈항해〉를 출품한 호퍼는 처음으로 작품을 팔게 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호퍼의 일생에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이후 호퍼는 계 속해서 무명화가의 신세로 지냈으며 1923년까지 단 한 점의 작품도 팔 지 못했습니다. 아모리 쇼가 있은 지 1년 후에 그린 〈푸른 저녁〉은 호퍼가 프랑스 인상주의에 탐닉하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작품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 으 로는 호퍼가 미국화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추구하 게 될 심리적으로 코드화된 그림들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호퍼 가 이 그림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파리의 밤 풍경이었습니다. 그림의 왼쪽에 있는 감정의 깊이가 느껴지는 인물 은 고독을 즐기듯 우울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호퍼는 붓 터치를 부드럽게 사용하여 인물을 표현했는데, 이로 인해 인물의 모습이 힘없이 늘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에 있는 광대는 옷과 화장으로 자신이 본모습을 숨 기고 있는데요. 그 결과 주변정황과 동떨어진 초현실적인 느낌을 줍니 다. 그는 담배를 물고 여러 가지 상념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 다. 호퍼가 프랑스에서 살던 기억에서 비롯된 이 이미지는 후에 고독하 고 소외된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뒤쪽에 있는 화장을 두껍게 한 여인은 카페에 앉아있는 군인, 광대, 그리고 베레모를 쓴 예 수리가 틈에서 손님을 찾는 화류계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는데요. 무심해 보이는 여인의 표정은 근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가진 우울한 일상의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자유롭게 그림작업을 하기 위해서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던 호퍼는 계속해서 삽화 그리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잡지사에서는 호퍼 가 잘 다루지 않는 특별한 삽화를 종종 요청하곤 하였습니다. 이에 1915년부터 그는 에칭기법을 사용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호퍼는 색채를 사용하지 않는 에칭작업을 통해 빛의 효과를 묘사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이후에 그린 유화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한편, 호퍼는 수채화 기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요. 1923년부터 매사추세츠의 해안도시 글로스터에서 지내면서 풍경을 수채화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호퍼에게 수채화는 과거와 현재를 이 어주는 가교였습니다. 그는 1880년대에 유행한 빅토리아풍의 절충적인 건축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후에는 전통적인 규범에서 벗어 나 고립되어 있는 풍경이나 작은 인물을 그렸습니다.
호퍼는 글로스터에 머물던 1923년에 여류화가 조세핀 버스틸 니비 슨 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호퍼와 마찬가지로 헨리의 제자였으며, 뉴욕미술학교 일러스트레이션 부에서 공부하였습니다. 호퍼와 조세핀 은 둘 다 프랑스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프랑스 시인 폴 베를 렌의 시를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글로스터에서 함께 수채화 작업을 하며 가깝게 지냈으며, 뉴욕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림을 그리고 작품에 대한 비평을 찾아 비교해 보는 등의 많은 일을 함께 하면서 서로 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1924년 7월 9일에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고 평생을 함께 살면서 늘 같은 관심을 공유하며 냈습니다. 결혼 후에 조세핀은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의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사실 조세 핀은 호퍼처럼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늘 호퍼의 작업을 좋아하 고 그의 작업을 경하였습니다. 호퍼 역시 아내의 초상화를 끊임없이 그림으로써 조세핀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호퍼의 수채화가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조금씩 호응을 얻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세핀의 도 움으로 1923년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된 여섯 점의 수채화 작품이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이후로 호퍼의 자신감은 한껏 고양되어 갔습니다. 1924년 가을에는 뉴욕의 렌 갤러리에서 수채화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는데요. 전시된 열한 점의 작품에 추가로 다섯 점까지, 모두 열여섯 점의 작품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전시회의 성공은 호퍼의 인생에서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싫어하던 삽화를 그리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호퍼는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유화작업에 몰입하 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팔아야 한다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적인 이미지와 테마를 통해 자신의 느 낌과 가치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의 창문>, 1928년, 캔버스에 유채, 73.7x86.4cm, 개인소장
에드워드 호퍼, <일요일>, 1926 년,캔버스에 유채, 73.7x86.4cm, 개인소장
에드워드 호퍼, <아침 11시>, 1926년, 캔버스에 유채,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에드워드 호퍼, <철길 옆의 집>, 1925년, 캔버스에 유채, 61x73.7cm, 뉴욕 현대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년, 캔버스에 유채, 84.1x152.4cm, 휘트니 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카페테리아의 햇빛>, 1958년, 캔버스에 유채, 102.2x152.7cm, 예일대 학교 미술관
호퍼와 같은 세대의 미국 예술가들은 비개성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인 관찰을 통해 대도시와 산업사회의 풍경을 연구했습니다. 화가이자 사진작가였던 찰스 실러, 찰스 더무스는 산업사회의 풍경을 매우 섬세하게 담아냈는데요. 이들의 작품 속에서 인간은 자연이 아닌 기계적이고 획일적인 느낌의 사물에 둘러싸여 차가운 금속성의 대지를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호퍼 또한 이들이 묘사하는 것과 동일한 인간의 고독을 느꼈지만, 대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의 흔적을 찾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주로 창문 너머로부터 빛이 비치는 현실의 풍경과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표현하였습니다. 호퍼는 20세기 초반 근대화된 사회변화가 사람들에게 일으킨 소외와 우울의 감정을 정확히 포착해 낸 예술가였습니다. 도시를 묘사할 때 호퍼는 특별한 일화를 소개하지 않고 단순하고 고립된 모습을 그렸는데요. 〈밤의 창 문〉을 보면 작품 속 인물은 화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배우처럼 화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호퍼는 장면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을 때까지 영화감독처럼 화면을 극적으로 구성하고 빛을 적절히 배치하였습니다.
〈일요일〉을 보면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일요일의 텅 빈 거리에 한 남성이 홀로 앉아 있습니다. 희망을 잃은 인간을 상징하듯 묘사된 이 남성은 수심에 잠겨 있습니다. 남성의 초점 없는 시선은 묘하게도 뒤쪽의 텅 빈 진열장과 조응합니다. 도시는 죽은 듯이 비어 있고, 뒤쪽 상점들은 물건을 파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호퍼는 내면의 고독한 감정을 ‘창문’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주 표현하였습니다. 〈아침 11시〉에서는 알몸의 여인이 창문 앞에 앉아 창문 밖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여인의 누드와 창문 바깥의 비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도시가 대비를 이루며 대도시 속에 있는 인물의 고독한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사와 동떨어진 단순하고 고독한 도시의 풍경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새로운 변화 속에서 현실감각이 뛰어나던 호퍼는 곧 동시대 삶의 모습과 도시를 그리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고독한 도시 풍경 호퍼의 그림에서 ‘집’은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집은 문명의 질서를 상징하며, 문명영역과 자연영역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공간입니다.〈철길 옆의 집〉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회색빛 하늘 앞에 빅토리아풍의 거대한 집이 덩그러니 서 있고, 현대산업의 상징인 철길이 저 택 앞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이 저택은 철로가 들어서기 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은 넓은 개 활자에 서 있는 이 저택은 마치 오랫동안 버려진 채 있는 도회 지 주택과도 같은 외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저택이 버려진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사실 철길 때문 입 니다. 평행하게 이어지는 철길은 회화공간을 자연스럽게 두 토막 낼 뿐만 아니라 저택의 하부를 삼키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철길이 놓인 흙 둔덕 부분은 마치 파괴된 자연을 보여주 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주택의 푸르스름한 회색톤은 녹슨 철길과 흙 둔덕을 표현하는 강렬한 색채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굴뚝의 선명한 붉은색은 무언가 상실했다는 공허함을 나타내는 상 징이며, 과거 이 집에도 활기찬 삶이 있었고 사람들이 살았다 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증언하는 것 같습니다. 건물에 드리워진 그림자로 미루어 볼 때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그림 속 하늘은 밝은 청색이 아니라 회색빛의 황량한 색조를 띠면서 우울한 분위기를 한층 더 조장하고 있습니다.
뉴잉글랜드 지방의 석양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철길의 석양〉에서는 〈철길 옆의 집〉과는 달리 문명공간이 아닌 때묻지 않은 자연을 향하는 전망을 취하고 있는데요. 여기서도 예 외 없이 철길이 등장하여 경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철길 너머의 자연은 낯선 느낌을 준다기보다 새로운 질서, 또 다른 삶의 영토처럼 보이는데요, 극대화된 빛의 효과가 이런 느낌을 더욱더 조장하고 있습니다. 철로는 석양빛에 반짝이고, 나지막한 언덕 위로는 단지 태양빛 때문이라고만은 보기 힘든 강렬한 녹색과 황색톤 색조의 줄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호퍼의 후기작품에서 빛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요. 그는 빛이 자신의 작업에서 색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면 서 “빛은 현실을 표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며, 화가가 관 찰하는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설명하였습니다. 호퍼는 빛을 관찰자가 대상을 바라보는 본질이라고 생각했고, 표면의 명암을 과감하게 생략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계속해서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한 빛에 관한 실험은 그의 작품세계가 성숙했을 때에도 중요한 회화적 요소가 되었습니다. 호퍼는 그림의 구도 속의 명암과 색조를 통하여 감정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두 골목의 교차로에 있는 허름한 레스토랑의 밤 분위기를 표현한 도시 풍경 화입니다. 어둠 속에 잠긴 도시는 오직 레스토랑 바에서 발원하는 빛으로만 밝혀지고 있으며, 공간을 사 선으로 관통하는 어둠은 그림의 구조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있는 남녀는 함께 있기는 하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는 않습니다.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은 손톱의 매니큐어를 점검하고 있고, 남자는 한 손에 담배를 든 채 손끝으로 여인의 손을 만지작거 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커플을 조용하게 바라보고 있는 화면 왼쪽 남자 손님의 뒷모습에는 고독이 느껴집니다. 이와 함께 호퍼는 장면을 극도로 단순화하고 레스토랑을 넓게 그림으로써 대도시의 삭막함을 표현하였습니다. 호퍼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서 보여준 회화적 특성은 카페테리아의 햇빛〉에서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하지만 두 그림 사이의 관계는 대칭관계입니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어둠이 깔린 바깥에서 환하게 불이 밝혀진 실내를 들여다보는 상황이지만, 〈카페테리아의 햇빛〉은 이와 정반대로 대낮의 환한 빛 가운데 실내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습니다. 한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소외와 고독의 감정이기는 하지만 공유의 장면을 보여주는 반면, 〈카페테리아의 햇빛〉은 햇빛이 실내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을 더욱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골똘한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여성과 창문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굳은 표정의 남성은 질서 정연한 구도 속에서 뚜렷이 대립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직각으로 교차하 고 있으며, 구석구석을 밝히며 사선으로 전체공간을 지배하는 햇빛은 두 사람 모두를 압도하고 있습니 다. 이 그림에서 창문은 구획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관람자는 창가에 놓인 화초가 없었더라면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창문은 빛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 다고 볼 수 있는데요. 즉, 빛은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두 인물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호퍼는 여든 번째 생일을 맞은 지 2달 후인 1967년 5월 15일, 워싱턴 스퀘어에 있는 화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세핀은 호퍼의 임종을 “임종의 순간 호퍼는 작업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가 세 상을 떠나는 데는 단지 1분이면 충분했다. 그는 고통도, 소리도 없이 떠나갔다. 그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조세핀 역시 호퍼가 눈을 감은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68년 3월 6 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호퍼가 세상을 떠난 후 각종 신문에서는 그의 임종을 기억하며 경의를 표했는데요. 『뉴스위크』지에서는 호퍼를 ‘매우 낯선 화가로서 현실주의자, 근대주의자, 낭만주의자, 구조주의자이자 시인’이라고 평하였습니다. 호퍼의 작품들은 1967년 9월에 개최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의 작품으로 전시되었습니다. 20세기 미국인의 삶의 단면을 무심하고 무표정한 방식으로 포착한 호퍼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쓱’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던 한 쇼핑 사이트의 광고를 기억하시나요? 이 광고에 영감을 준 화가는 다름 아닌 에드워드 호퍼입니다. 20세기 미국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호퍼는 요즘 대중문화에서 뜨고 있는 핫한 타입니다. 지난 2016년에는 국내의 유명 패션잡지에서는 호퍼의 그림을 오마주한 화보를 선보여 주목을 끈 바 있고, 호퍼의 그림 13점을 스크린에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2013년 베를린 영화제에 서 ‘지극이 우아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에서는 야근 후 홀로 도넛을 먹으러 온 호머 심슨의 모습을 담은 장면에서 호 퍼의 그림을 오마주 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호퍼의 인지도가 오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2010년 이후부터 언급 횟수가 급증하고 있는데요. 특히 예술영화와 유명인들이 호퍼를 널리 알린 일등공신들입니다. 앨프리드 히치콕을 포함한 수많은 감독이 호퍼의 그림을 모티프로 삼은 영상을 선보였으며, 인기작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동물원에 가기』와 『여행의 기술』 의 일부분을 호퍼의 작품 감상에 할애하였습니다. 또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에 호퍼의 풍경화 두 점을 임차해 백악관 집무실에 걸어놓 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호퍼가 자주 인용되는 것은 그의 그림에 대한 공감대 때문입니다. 평생을 뉴욕에 머물며 사실주의 화풍을 고집했던 그는 대공황기 도시 노동자들의 삶을 담담하게 담아냈습니다. 그림에 그려진 카페나 모텔 등의 공간 속에 있는 무표정한 인 물든 현재에도 익숙할뿐더러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그의 작품에서 쓸쓸함과 공허를 읽고 있습니다.
국내의 한 영화평론가는 “시공간은 바뀌었지만 세상과의 단절 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도시인이 늘어나고 있다 보니 호퍼 작품에 공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요즘 대중문화가 100여 년 전 미국화가를 호출한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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