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화의 창시자,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1395년경 ~ 1441) 생애
여러분, 이 작품을 알고 계신가요? 이 그림은 화가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얀 반 에이크는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과거 행적이나 초기 작품들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아 미궁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작품이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가 작품을 그린 화가처럼 그림 속에 수많은 수수께끼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란 것, 알고 계신가요? 이번 시간을 통해 미궁의 화가 얀 반 에이크와 화가가 남긴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림 속 비밀을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얀 반 에이크가 활동했던 당시의 배경을 함께 알아볼까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 서양미술에서는 수직적이고 직선적인 느낌을 주는 ‘국제 고딕양식’이 전 유럽의 궁정을 중심으로 유행하였습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물로는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으며, 고딕 미술에서는 특히 종교에 기초한 성화가 많이 그려지곤 하였습니다.
그 후 15세기로 넘어오면서 르네상스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요. 고딕 양식의 비현실적인 양식화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문화의 근본정신인 ‘휴머니즘’에 맞춰 그림의 피사체를 자연과 인물에 집중하여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방향으로 미술의 흐름이 변화되었습니다.이러한 미술 양식의 변화는 알프스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발달하였는데요. 남쪽은 이탈리아, 특히 피렌
체와 북쪽 지방의 플랑드르 지방 즉, 오늘날의 벨기에 서부, 네덜란드 남서부, 프랑스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이 그 중심지였습니다. 15세기 플랑드르 사실주의 미술은 이탈리아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미학을 선보이며 황금기를 구가하였는데요. 이 플랑드르 사실주의 미술의 토대를 만든 대표 화가이자 북유럽 회화의 아버지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얀 반 에이크입니다.
얀 반 에이크는 1420년경 갑자기 화려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에이크는 미술사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대가이지만 출생 시기, 생활과 행적, 초기 작품 활동 등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며 어디서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도 알려지지 않은 그야말로 미궁의 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요.다만 오늘날 벨기에 동부 랭부르 지역의 마세이크에서 1395년경에 태어나 1425년경까지 덴 하흐의 홀란드 백작 궁정에서 일했던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유화는 상당히 고가의 물감을 재료로 사용한 그림이죠. 얀 반 에이크는 어떻게 이런 비싼 유화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15세 기 플랑드르 미술은 궁정 귀족과 부르주아 시민이라는 양쪽 계급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에이크는 부르고뉴 공국의 궁정화가인 동시에 새롭게 탄생해 세력을 키우고 있던 부르주아 시민 계급의 취향을 대변하는 화가이자 궁정화가였기 때문에 다른 화가들에 비해 비교 적 여유 있고 풍요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얀 반 에이크 그림의 특징에 대해 알아볼까요? 매우 세밀하게 그림을 그렸던 얀 반 에이크는 꼼꼼한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특히 종교화와 초상화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는데요. 에이크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조화로운 구성과 정밀한 관찰에 기반을 둔 극도의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 완벽한 마감은 전설적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또한 얀 반 에이크는 유화를 발명한 사람으로 칭송받고 있는데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왼쪽의 그림과 유화로 그려진 오른쪽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그림의 선명한 색과 섬세한 붓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작품 <위대한 성 블라시우스>는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한 그림인데요. 프레스코 기법은 사용할 수 있는 색이 한정되어 있고 그림을 수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섬세한 표현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습니다. 실제 로 <위대한 성 블라시우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에 사용한 색이 한정적이며 그림 속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이나 피부, 머리카락 등이 자세한 질감의 표현 없이 평면적으로 표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얀 반 에이크의 유화는 풍요로운 색채 표현이 가능하였으며 섬세한 질감 표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 속 성모마리아가 입고 있는 드레스의 질감과 주름이 완벽하게 표현된 것이 보이시나요? 마치 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처럼 생생합니다. 가구 또한 나무로 만든 탁자의 질감을 살리고 있으며, 성모마리아뒤에 걸려있는 카펫도 실로 짠 듯한 질감과 함께 약간 색이 바랜듯한 현실감 있는 색감을 풍부하게 나타 내고 있습니다.비록 이전에도 유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가 유화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 회화의 주류였던 프레스코화, 템페라화와 구별되는 유화 특유의 풍요로운 색채와 섬세한 질감을 완벽하게 구현하였으며 에이크로 인해 유화의 기법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를 ‘유화의 창시자’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2. 작품활동, 불포화지방산을 물감에 이용하다
오늘의 주인공인 얀 반 에이크는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과거 행적이나 초기 작품들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아 미궁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 작품이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가 작품을 그린 화가처럼 그림 속에 수 많은 수수께끼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란 것, 알고 계신가요? 이번 시간을 통해 미궁의 화가 얀 반 에이크와 화가가 남긴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림 속 비밀을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얀 반 에이크가 활동했던 당시의 배경을 함께 알아볼까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 서양미술에서는 수직적이고 직선적인 느낌을 주는 ‘국제 고딕양식’이 전 유럽의 궁정을 중심으로 유행하였습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물로는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으며, 고딕 미술에서는 특히 종교에 기초한 성화가 많이 그려지곤 하였습니다.
그 후 15세기로 넘어오면서 르네상스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요. 고딕 양식의 비현실적인 양식화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문화의 근본정신인 ‘휴머니즘’에 맞춰 그림의 피사체를 자연과 인물에 집중하여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방향으로 미술의 흐 름이 변화되었습니다.이러한 미술 양식의 변화는 알프스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발달하였는데요. 남쪽은 이탈리아, 특히 피렌
체와 북쪽 지방의 플랑드르 지방 즉, 오늘날의 벨기에 서부, 네덜란드 남서부, 프랑스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이 그 중심지였습니다. 15세기 플랑드르 사실주의 미술은 이탈리아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미학을 선보이며 황금기를 구가하였는데. 이 플랑드르 사실주의 미술의 토대를 만든 대표 화가이자 북유럽 회화의 아버지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얀 반 에이크입니다.
처음에는 에이크도 다른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기름에 안료를 혼합한 유화구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햇빛에 말리고 있던 자신의 그림이 갈라지는 것을 발견한 에이크는 그림을 그늘에서도 건조할 수 있는 오일을 찾기 위해 실험을 시작하였는데요. 수 차례의 시도 끝에 기법을 발견해 낸 에이크는 만들어진 오일을 달걀노른자, 안료와 섞어 그리는 템페라의 바니시로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순수 안료에 직접 섞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일을 섞은 순수 안료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본 에이크는 그려진 유화가 햇빛이 없어도 잘 건조될 뿐만 아니라 광택이 생긴 것을 발견하였는데요. 심지어 오일이 들어간 물감은색의 선명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음영과 색채를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얀 반 에 이크가 사용한 오일에 들어가 있는 성분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 던 것일까요?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얀 반 에이크 이전의 여러 그리스 화가들이 사용했던 프레스코와 템페라 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의 화가들은 물감 본연의 색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마땅한 재료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요. 물감에 광택과 점도를 주기 위해 달걀노른자, 꿀, 무화과즙을 섞어서 사용하였으나 물감이 돌에 스미고 번져서 색감이 탁하게 표현되며 섬세한 붓질과 색채 표현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1430년대 플랑드르에서 새로운 기법을 발명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는데요
바로 얀 반 에이크가 발명한 기법이었습니다. 이전의 프레스코와 템페라화에서 물감에 달걀노른자를 섞었던 것과 달리 얀 반 에이크가 만든 유화 물감에는 특별한 물질이 들어 있었는데요. 물감 속 오일의 비밀은 바로 아마인유였습니다. 아마인유에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산이 들어 있는데요. 이 아마인유가 사용된 물감은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정교한 붓질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풍부한 색채 표현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색의 선명도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도 음영과 색채를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 는 점에서 유화의 혁신을 가져왔습니다.특히 아마인유를 사용한 얀 반 에이크의 유화물감은 초상화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였는데요. 다른 작품 속 인물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 1478년경
베키오 데 무젤로, <수태고지>, 1440년경, 프레스코,피렌체 산 마르코 박물관
우선 왼쪽의 그림은 산드로 보디첼리의 <봄>의 일부인데요. 이 작품은 템페라 기법으로 그려졌으며 여인들의 모습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얼굴의 이목구비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지 않고 명암이 잘 나타나지않아 인물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오른쪽 그림은 어떨까요? 이 작품은 베키오 데 무젤로의 <수태고지>의 일부 모습인데요. 성모마리아와 천사가 입고 있는 옷의 색채가 칙칙해 보이며 섬세한 표현이 필요한 인물들의 모습도 왼쪽 그림과 같이 명암이 없이 평면적으로 그려진 것을 보아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이번엔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초상화를 볼까요? 방금 보셨던 두 개의 작품에 비해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생동감이나 섬세함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두 작품 속 인물과 <얀 더 레이우의 초상>의 인물의 표현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얀 반 에이크가 사용했던 아마인유가 포함된 유화 물감이 그림에 광택을 부여하였고, 명암의 표현이 가능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물감을 통해 얀 반 에이크는 인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며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주인공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나는 듯한 효과가 나타났던 것입니다.아마인유에 들어있는 불포화지방산은 지방산 사슬 중에 불포화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는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데요.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불포화기가 가교결합을 하게 됩니다. 이때 지방산 사슬이 굳어져 단단한 도막을 형성하는데요. 얀 반 에이크는 바로 이 원리를 그림물감 에 이용한 것입니다.유화의 발명 이후로 거의 모든 서양화는 유화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대부분의 유화 물감에는 아 마인유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것이 바로 얀 반 에이크가 유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3. 얀 반 에이크의 은밀한 상징들이 숨어 있는 작품 세계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얀 반 에이크의 작품들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에이크의 가장 대표적인 그림인 <아르놀피니의 결혼>부터 볼까요? <아르놀피니의 결혼>은 이전까지 그려진 대부분의 이탈리아풍 그림과 달리 굉장히 사실적이며 소품 하나하나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그 중 어느 소품도 우연히 들어간 것이 없이 치밀한 계산과 상징을 담고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작품 속에 담겨있는 상징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림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그림의 배경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초상화를 의뢰한 아르놀피니가 살았던 곳은 지금의 북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지역인 ‘플랑드르’입니다. 이 지역은 모직물 산업이 크게 번창했던 곳이었는데요. 이곳에서 막대한 부를 쌓은 상인 아르놀피니가 자신의 결혼식 장면을 작품으로 그려달라고 얀 반 에이크에게 요청하면서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체크 포인트! 바로 ‘의뢰인의 사회적 지위와 부’입니다. 그림을 찬찬히 따져보면 성공한 상인이었던 아르놀피니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당시 굉장히 고가인 오렌지가 창틀에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는 모습, 아르놀피니가 쓰고 있는 챙 넓은 모피 모자,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걸려있는 점, 침대 위에 걸려있는 붉은 색 커튼 등으로 보아 아르놀피니가 상당한 부호였음을 추측할 수 있으며 당시 흔치 않았던 외국 혈통의 검은 강아지, 바닥에 놓인 나막신 또한 그 당시 아르놀피니가 쌓은 막대한 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부인이 입고 있는 초록색 드레스인데요. 신부 드레스를 칠한 녹색은 말라카이트그린이라는 성분으로, 구리 광맥 속에서 가끔 출토되는 구리 리간드의 구리 카보네이트입니다. 대단히 아름다운 이 녹색 성분의 진품은 kg당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인데요. 이렇게 비싼 안료를 그림의 상당히 넓은 부분에 칠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르놀피니가 굉장한 부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체크포인트는 ‘결혼’입니다. 원래 이 그림은 제목이 붙여져 있지 않았는데요. 어떻게 작품 속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우선 그림 한가운데 가장 밝게 강조하여 그 린 맞잡은 손이 보이는데요. 남녀가 손을 맞잡은 것은 결혼을 나타내며 특히 남자가 오른손을 들고 서약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혼 서약 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림 상단의 샹들리에를 확인해 볼까요? 많은 촛대 중 한 개의 촛대에만 촛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밝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촛불을 켜둔 이유는 바로 이 촛불이 혼인 양초이기 때문입니다. 중세 이래 결혼식의 촛불은 중요한 상징물이며, 한 개의 촛불은 태초의 빛을 상징하여 결혼이라는 신성한 신의 섭리가 시작함을 알려주는 역할이었다고 하네요. 또한 신성한 결혼의 종교적 의미를 위해 거울 옆 벽에 걸려있는 천주교
의 묵주도 보입니다.이어서 침대 모서리 위의 작은 목각을 보면 아기 잉태의 수호 성녀인 성 마가리타가 사탄을 나타내는 용을 밟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요. 결혼이 사탄의 침입 없이 영속되고 아이도 잘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는 열망을 담고 있습니다. 목각 바로 밑에는 솔이 하나 달려 있는데 신성한 결혼을 위해 성수를 뿌리는 솔로 보입니다. 화면 아래의 강아지가 상징하는 것은 충성으로 결혼 당사자들의 정절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그림 속에는 두 켤레의 나막신이 놓여 있는 데요. 이것은 『구약성경』의 「출애굽기」 3장 5절의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이 결혼이 신의 축복을 받은 신성한 예식임을 나타내고 있는 장치입니다.특히 이 그림의 진가가 나타나는 부분은 벽에 걸려있는 거울과 거울 위에 적혀있는 서명 부분인데요. 얀반 에이크는 볼록 거울을 사용하여 방 반대쪽의 정경을 그려 넣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었습니다. 즉 이 그림은 어안렌즈를 쓰지 않고도 교묘하게 방 전체의 모습을 그려낸 것입니다. 그림 속 매우 작게 그려져 있는 거울 속에 또 다시 방 전체의 모습을 그려 낸 화가의 솜씨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는데요. 볼록 거울의 주변에도 열 개의 작은 원형 속에 그리스도의 고난 장면을 그려 넣어 신성한 결혼 서약에 엄숙함을 더하는 장치로 나타내었습니다. 거울 안 정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신랑 신부 외에 붉은 옷과 파란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신명기 19장 15절의 “두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참”이라는 구절과 신약성경의 요한복음 8장 17절의 “예수도 율법에 서 두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참”이라는 구절로 추측해 볼 때 거울 안의 두 사람이 결혼을 보증하는 입회인으로 보입니다.특히 거울 위에 적혀있던 서명을 해석해 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얀 반 에이크가 1434년 여기에 있다’라는 뜻으로 이 서명을 통해 거울 안에 있던 증인 중 한 명이 얀 반 에이크임을 나 타내었으며, 그림 자체가 결혼증서의 역할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아르놀피니의 결혼>의 마지막 체크 포인트! 그림 속에 남아 있는 의문점입니다. 신부의 배를 보면 마치 임신한 듯 배가 불러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결혼 당시 신부가 임신 중인 상태였던 것이었을까요? 현재로써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추측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신부가 머리에 쓴 흰 색 헤어드레스는 처녀와 순결을 상징합니다. 또한 허리를 가는 끈으로 질끈 매고 있는데요. 만일 임신중인 상태라면 허리를 이렇게 가늘게 매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림이 그려진 당시에는 가는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허리를 강하게 조여 매고 치마를 풍성하고 길게 하는 것이 유행이었으며 풍만하게 나온 복부와 그에 대비되는 가는 허리가 당시 이상적인 여성미의 표현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신부가 임신 중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더 있습니다. 어째서 이 부부는 결혼식을 방에서 치른 것일까요? 15세기의 결혼은 대부분 성당이나 예배당에서 이루어졌었는데요. 아르놀피니 부부는 방에서 결혼식을 하였습니다. 비록 당시 프랑드르에서 교회가 아닌 가정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당대의 내로라하는 부호인 아르놀피니가 방안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린 것은 의문이 드는데요. 한 가설에 의하면 이 결혼이 가문끼리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테차노추피의 저서 『천 년의 그림여행』에 의하면 당시 아르놀피니는 60대 남자였고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젊은 유부녀를 납치해 겁탈한 후 결혼식을 올려서 정식 정부로 삼았다고 알려졌는데요. 실제로 신과의 신성한 약속을 뜻하는 신랑과 신부의 ‘벗어 놓은 신발’이 한 군데로 모아져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을 화가가 은근히 예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얀 반 에이크의 두 번째 작품은 <헨트 제단화>입니다. 얀 반 에이크의 형제인 후베르트 반 에이크 역시 화가였었는데요. 성 바보 성당의 제단화는 형인 후베르트 반 에이크가 그리기 시작하였고, 동생인 얀 반 에이크가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작품을 제작하는데 후베르트가 정말로 관여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 네덜란드 회화에서도 손꼽히는 이 작품은 당시 겐트의 부시장이자 성 요한 교회의 위원이었던 요도쿠스 베이트와 그의 아내 엘리사베스 보르뤼트의 주문으로 제작된 것으로, 성 바보 대성 당에 걸린 그 순간부터 관람객들의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먼저 제단화의 전체 구성을 살펴볼까요? 헨트 제단화는 윗단과 아랫단, 총 2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요. 윗단 중앙의 성부 하느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보이며 양쪽 끝에는 아담과 이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랫단에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을 상징하는 ‘어린양의 경배’ 그 림이 그려져 있네요.화면에 제시된 제단화는 펼쳐져 있는 상태의 모습인데요. 실제 제단화를 접었을 때 나타나는 그림의 수 까지 합쳐서 세어보면 총 26개의 다양한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제단화에도 얀 반 에이크의 새로운 미술개념과 함께 미스터리 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요. 함께 자세히 알아볼까요? 먼저 윗단에서 얀 반 에이크의 새로운 미술 개념을 보여주는 부분은 바로 양 날개 부분의 ‘타락 이후 아 담과 이브의 모습’입니다. 성경에서는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야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았다.’라고 쓰여 있는데요. 아담과 이브를 보면 손에 들고 있는 무화과 잎사귀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발가벗은 채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상화된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던 로마의 미술 전통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이탈리아 초기의 르네상스 화가들과 다른 얀 반 에이크의 그림 성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아담과 이브의 모습입니다.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신기하게도 마치 방금 그림 속에서 튀어나와 실제로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바로 원근법을 사용하였기때문이었습니다. 얀 반 에이크는 인물의 모습을 평면적으로 그려왔던 이 전의 그림과는 달리 인물의 구도 배치와 명암을 적절히 사용하여 원근감을 부여하였는데요. 그 결과 그림 속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아랫단에는 어떤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이 그림은 헨트 제단화의 ‘어린양에 대한 경배’인데요. 중앙의 그림을 확대해서 보면 성모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태고지 장면이 보입니다. 하늘에는 해가 떠 있고, 그로 인해 생긴 그림자가 보이는데요. 그림 속 빛과 그림자의 방향이 실제 제단화가 걸려있던 페이트 예배당 안에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의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 합니다. 얀 반 에이크가 실제로 예배당의 빛과 그림자의 구도를 계산하여 그림 속에 반영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도 헨트 재단화는 매우 신비로운 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을 감상하였는데요. 화가가 작품 속에 숨겨놓은 수 많은 상징들의 비밀을 함께 파헤쳐보았습니다. 이제 미궁의 화가 얀 반 에이크에 대해 잘 아시겠죠? 불포화 지방산이 함유된 아마인 유를 활용한 물감을 개발하여 그림의 풍부한 색 표현과 섬세한 붓질을 가능하게 한 유화의 창시자이며, 상징적이고 비밀이 가득 담긴 그림을 남긴 미궁의 화가 얀 반 에이크는 현재까지도 15세기 미술의 대가로서 평가 받고 있습니다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ART- 프란체스카, 르네상스, 생애와 작품 (12) | 2024.02.29 |
---|---|
ART- 코시모, 생애와 작품 (2) | 2024.02.29 |
ART-알폰스 무하, 아르누보, 생애와 작품활동 (0) | 2024.02.10 |
ART-모딜리아니, 긴얼굴의 초상화, 생애와 작품활동 (0) | 2024.02.09 |
ART-에드워드 호퍼, 생애와 작품활동 (0) | 2024.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