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토레토(Tintoretto, 1519~1594) 생애
당대의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거나 몹시 싫어하는 화가로 나뉠 만큼 호불호가 갈렸던 화가였다고 전해지는데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였던 조르조 바사리는 이 화가의 작품을 보고 괴상하고 특이한 양식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의 작품이 많은 혹평을 받았던 것은 시대를 앞서나갔던 대부분의 위인들이 그렇듯이, 기존의 여러 화가들과는 차별화되는 독창적이고 과감한 도를 하였기 때문이었는데요. 비판이 대부분이었던 오랜 시기를 거쳐 낭만주의적 비평가들은 오늘의 화가에 대해 르네상스 후기 베네치아 사회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환경에서 영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지닌 예술가로 평가하였으며, 이후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예술가로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화가의 화가라는 칭송을 받았던 틴토레토입니다. 틴토레토는 베네치아에서 천을 염색하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평생 동안 베네치아를 거의 떠나지 았다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베네치아의 공공건물 안에 들어가면 틴토레토가 남긴 훌륭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틴토레토의 본명은 야코포 로부스티였습니다. 어린 염색공이라는 뜻의 별명인 틴토레토를 자기 이름처럼 사용하면서 그 당시 지위가 높은 편이 아니었던 장인의 출신 배경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바로크 시대 베네치아의 화가이자 전기 작가인 리돌피가 1642년에 쓴 『틴토레토라 불리는 야코포 로부스티의 생애』는 틴토레토에 대해 알려주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역사적 자료입니다. 틴토레토가 부친의 염색업을 돕다가 언제부터 누구에게 그림을 배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사실이 없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 화파를 완성한 화가 티치아노 밑에서 짧은 기간 도제 생활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두 미술가는 후원자의 신분과 종교적인 성격에 있어서 차이를 보였는데요. 스승인 티치아노는 궁정의 상류층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던 반면 틴토레토는 중산층 사람들을 위해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또한 리돌피는 틴토레토가 작업실 벽에 미켈란젤로의 드로잉과 티치아노의 색채라고 써서 붙이고 좌우명을 삼았다는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 틴토레토의 그림이 두 화가의 장점을 종합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며, 아마도 틴토레토는 거의 독학으로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주요한 두 계통이라고 할 수 있는 피렌체와 베네치아 회화의 장점을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계승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로 나온 틴토레토의 비정통적인 양식은 당대와 후대에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틴토레토는 1548년 베네치아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하게 됩니다. 틴토레토는 빛과 색채를 선호하는 베네치아 특유의 경향을 유지하되, 여기에 과장된 동작과 함께 힘차고 강한 육체 그리고 보는 이를 놀라게 할 시선을 첨가했습니다.
1550년대에 틴토레토는 유려한 화풍과 왜곡된 동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신화와 종교 장면을 주로그렸는데요. 이후로도 계속해서 거대한 작품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1562년에 틴토레토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야심 찬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데요. 바로 스쿠올라 그란데디 산 로코 재단의 건물을 장식할 대형 작품 석 점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작품을 의뢰받은 틴토레토는 1562년부터 1588년까지 20년 이상을 세 개의 연작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이 작품들은 틴토렌토의 양식이 더욱 자유분방해지면서 더욱 간결한 풍경의 표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틴토렌토는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를 얻을 때까지 1층에 위치한 방들을 돌며 감동적인 작품을 계속해서 그려나갔습니다.
1575년부터는 베네치아의 도제 궁을 재장식하는 작업에 참여하였는데요. 이 곳의 대회의실에는 미완성작 낙원이 남아있습니다. 낙원과 같은 말년의 틴토레토의 작품들은 눈에 띄게 신비로운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틴토레토는 70대의 나이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1594년 생을 마감하는 몇 달 전 까지도 그림 작업에 매진하였던 열정적인 화가였습니다. 말년의 틴토레토의 작품 속에 나타난 신비로움은 훗날 기괴하고 특이한 색채 감각의 화가 엘 그레코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는데요. 이 외에도 수많은 후대의 화가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던 위대한 화가로 남았습니다.
틴토레토는 자신의 스승 티치아노가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형태와 색채의 단순한 아름다움에 진력이 나 있었습니다. 물론 티치아노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화가로서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틴토레토가 느끼기에 티치아노의 작품들은 감동적이기보다는 쾌감을 주는 경향이 더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틴토레토의 작품들을 보면 성경의 이야기들을 다른 화가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자고 결심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데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린 사건의 긴장감과 극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틴토레토가 보여주는 새로운 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작품활동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을 보면 틴토레토가 자신의 그림을 비범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은 혼란스럽고 번잡하게 느껴지는데요. 그림에서 가장 처음 보게 되는 것은 질서 있게 배치된 인물들이 아닌 길게 뚫려 있는 아치 형태의 궁륭입니다. 왼쪽 구석에는 후광이 빛나는 사람이 서 있는데요 후광으로 보아 바로 이 남자가 성 마르코인 것으로 보입니다. 마르코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멈추게 하려는 듯이 팔을 들고 있는데요. 묘소에서 시신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뒤에 서 있는 귀족은 횃불을 들고 다른 묘소의 비명을 읽으려 하고 있습니다. 바닥에는 시체 한 구가 양탄자 위에 누워 있으며 바로 옆에 화려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시체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른쪽 구석에는 놀란 표정으로 마르코 성인을 보면서 커다란 몸짓을 하고 있는 남녀 한 무리가 있네요. 도대체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 작품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왔던 일화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성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주교를 역임하다가 사망한 후 그 성당의 지하 묘굴에 매장되었다고 하는데요. 베네치아 사람이 성 마르코의 유해를 찾는 경건한 부름을 받고 지하 묘굴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어떤 묘석에 성 마르코의 유해가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유해를 찾던 사람들이 우연히 성 마르코의 유해를 찾았을 때 성 마르코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 유해가 자신의 것임을 알려주었는데요. 즉, 이 작품에서 성 마르코는 이미 자신의 유해를 발견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묘굴을 뒤지지 말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틴토레토는 바로 이 놀라움의 순간을 작품으로 그려내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본 당시의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빛과 어둠, 원경과 근경 및 조화가 결여된 몸짓과 동작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곧 틴토레토가 평범한 방법으로는 우리들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엄청난 기적의 인상을 창조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틴토레토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조르조네와 티치아노 같은 베네치아 화가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었던 원숙한 색채의 아름다움까지 희생하였습니다.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에 성당에는 틴토레토의 작품 최후의 만찬이 걸려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는 열두 제자가 모인 자리에서 이곳에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데요.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포도주와 빵을 나누어 주고 이를 자신의 피와 살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희생이 속죄를 위한 것임을 선언합니다. 틴토레토는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다수의 그림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틴토레토가 사망하기 몇 달 전에야 완성되었던 화가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빵과 와인잔을 보면 누구나 이 작품이 최후의 만찬을 다룬 것임을 알 수 있지만, 틴토레토는 독창적으로 이 장면을 표현하였습니다.
배경이 되는 공간은 신성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여인숙을 떠올리게 할 만큼 누추하며 마땅히 주인공이어야 할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테이블 뒤쪽으로 밀려나 있고, 오히려 음식을 나르는 여인과 시종들이 전경에 그려졌습니다.
틴토레토는 이러한 대조를 통해 이차적인 인물과 사도들을 구분 짓고, 인물들 간에 위계를 부여하였는데요. 밝게 빛나는 후광으로 중심적인 존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위계를 부여하였습니다.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운 구성과 과장된 원근법과 역동적인 화면은 훗날 등장하는 바로크 양식을 암시하는데요. 특히 빛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틴토레토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천장의 횃불과 예수의 후광에서 동시에 나오는 빛은 극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횃불에서 나오는 연기는 투명한 천사의 형상을 드러내어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여인숙 같은 공간에 더해진 환상적인 분위기는 신비로움과 일상의 혼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틴토레토가 인물의 과장된 몸짓과 역동적인 구성, 극적인 빛을 즐겨 사용한다는 사실은 용과 싸우는 성 오르기우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맨 위에는 하나님을 둘러싼 신성의 빛으로 이루어진 동심원 고리가 있는데요. 이 빛이 그림을 환하게 비춰주며 틴토레토의 웅장한 전투 장면을 덮어주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성 게오르기우스는 리비아의 실레네에서 악룡을 죽이고 공주를 구한 기사였는데요. 성 게오르기우스가 악룡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있는 순간이 그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인 성 게 오르기우스는 일반적인 회화의 규칙과는 정반대로 주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배경 속 멀리 들어가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틴토레토는 공주를 관람자 방향으로 뛰어오는 것처럼 그려서 긴장감을 최고조로 이끌었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음산한 빛과 불안정한 색조가 어떻게 긴장감과 흥분된 감정을 고무시키는지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틴토레토는 작품이 전설적인 장면에 대해서 자신이 상상한 바를 전달하기만 하면 그림이 완성된 것이라고 각하였습니다. 매끈하고 세심한 마무리 손질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그 것은 자신의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정돈된 작품들은 오히려 보는 사람들의 주의를 그림의 극적인 사건으로부터 다른 데로 돌려버릴 위험이 있었다고 생각했던 틴토레토는 마무리 손질을 하지 않은 채로 그림을 내버려 두었고,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틴토레토는 사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자 했으며 또 과거의 전설과 신화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탐구하고자 한 화가였습니다.
치유의 상징으로서의 뱀
의학을 상징하는 로고에는 대부분 뱀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엠뷸런스에 표시된 생명의 별에도 뱀이 감긴 막대가 들어 있고, 세계보건기구의 로고에도 뱀이 감긴 막대가 그려져 있는데요. 틴토레토의 작품 속에서도 뱀이 치유의 상징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뱀이 치유의 상징이 된 것일까요? 작품 구리뱀을 감상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틴토레토가 그린 구리뱀의 화면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바로 신의 분노를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상단과 불 뱀에 물려 고통 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그린 하단의 장면입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이야기를 알아야 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모세를 통해 구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고 광야에서 단련을 시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제공한 기적의 양식인 만나가 지겹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계속되자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어 많은 사람들이 뱀에 물려 고통받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하자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 높은 곳에 매달았는데요. 그것을 쳐다보자 사람들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틴토레토는 자신의 작품에도 성경의 일화를 따라 뱀을 치유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는데요. 막대기에 걸린 뱀의 모습이 독특하게 묘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머리는 물고기의 모습이고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는데,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이브를 유혹했던 뱀의 모습을 따서 그린 것입니다. 이번에는 뱀이 걸려있는 막대기를 볼까요? 틴토레토는 막대를 십자가로 나타내었는데요. 이 막대기를 통해 예수를 상징하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감긴 물고기 머리는 병의 치유와 함께 예수를 상징하는데요. 예수가 모세의 구리뱀과 같은 구원의 역할을 할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전해지는 내용 외에도 뱀이 치료의 상징이 된 또 다른 가설이 있는데요. 바로 원시 종교 형태의 토테미즘 사상입니다. 사람들은 뱀을 치유와 불사의 존재로서 숭배하였습니다. 뱀이 여러 번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보고서 한 번 허물을 벗을 때마다 젊어진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뱀이 강력한 치유력을 가진다고 믿었던 사람들로 인해 뱀은 재생과 불사신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작품 구리뱀 속에는 틴토레토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베네치아에는 역병이 돌아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죽었던 끔찍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틴토레토는 치유를 상징하는 뱀과 구원자를 주제로 한 그림을 통해 시름에 빠진 시민들이 끔찍한 재앙에서 구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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