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 생애
이탈리아 15세기의 초기 르네상스 시대는 이전 세기에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이 대중화시킨 휴머니즘이 확대된 기였습니다. 미술에서 휴머니즘은 고전 고대의 역사나 신화 등 기독교 이외의 새로운 주제의 도입, 원근법이나 해부학을 통한 과학적 대상 묘사, 초상의 부활 등의 형태로 나타났는데요, 이때 정치적인 상황에서 세력이 커진 군주나 부호는 경쟁적이고 과시적으로 미술가와 미술품을 후원하였다고 합니다. 그중 피렌체의 은행가 집안의 메디치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요, 이러한 16세기의 휴머니즘과 메디치의 후원이 낳은 가장 위대한 성과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잊히지 않을 위대한 피렌체의 화가 보티첼리입니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화가이며 본명은 알렉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산드로 보티첼리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요? 보티첼리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통이라는 뜻인데요, 몸이 통통했던 보티첼리 형의 별명 보티첼리가 나중에 화가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보티첼리는 피렌체에서 가죽장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금 세공사 훈련을 받았는데요, 열여덟 살이 되자 가르멜파 수사였던 화가 프라 필리포 리피의 제자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보티첼리의 스승 필리포는 원래 수도원 사제였는데, 피렌체 명문가의 딸이자 수녀인 루크레치아와 사랑에 빠져 도피행각을 벌였으며 이후 위대한 화가로 추앙 받는 작은 필리포 필리피노 리피를 낳았습니다. 필리포는 파계한 뒤에도 사제의 이름 앞에 붙이는 형제라는 뜻의 프라를 계속 사용하여 자신의 이름을 프라 필리포 리퍼라고 지칭하였다고 합니다.
필리포와 보티첼리의 사제 관계는 매우 끈끈했다고 전해지는데요, 필리포는 보티첼리의 본명으로 자신의 딸의 이름을 알렉산드라라고 붙였을 정도로 보티첼레를 아꼈으며 보티첼리는 스승 필리포가 죽은 뒤에 필리포의 아들 필리피노 리피를 잘 가르쳐 위대한 화가로 키워내 스승의 사랑에 보답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보티첼리는 1470년에 피렌체에서 자신의 공방을 차려 독립하였는데요, 당시 예술가들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관심을 끌게 되었기 문입니다. 그 결과 보티첼리의 공방에는 작품 의뢰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1481년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초청으로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를 그렸습니다. 성당의 왼쪽 벽면에는 모세의 선택의 작품을 포함한 모세의 생애를, 오른쪽 벽면에는 그리스도의 유혹을 포함한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렸는데요. 두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보티첼리는 피렌체의 미술 양식, 제단화, 프레스코, 다양한 크기의 원형 그림들을 연구하였으며 환상적인 풍경과 감동적이고 생기 넘치는 인물들을 조화롭게 구성하는 방법을 창안해 냈습니다. 하지만 찬란했던 보티첼리의 영광은 머지않아 끝나고 말았는데요. 보티첼리의 말년에는 피렌체 회화가 급격히 발달한 시기로 보티첼리보다 7살 어렸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30살 어린 미켈란젤로가 전성기 르네상스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티첼리는 1500년 이후로 거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점차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1502년에는 제자와의 동성애 혐의로 고발되기도 하였는데요. 결국 보티첼리는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지 못하고 1510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 미술의 개화기를 이끌어간 화가 조르조 바사리는 보티첼리가 말년에는 일도 못하고 똑바로 설 수도 없어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병들고 노쇠해져 세상을 떠났다. 고 전하였다고 하니, 이 위대한 화가의 말년은 굉장히 쓸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화가 보티첼리는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수수께끼 속의 인물입니다. 수많은 상징들을 담고 있는 화가의 작품들이 보는 이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 것처럼 말이죠, 도상학적 의미를 둘러싼 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으로 인해보티첼리의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새롭게 평가받고 있답니다. 만일 어린 산드로가 금세공사가 되지 않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했더라 면, 세상은 위대한 피렌체 르네상스 화가 한 명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에 공존하는 비너스의 과거와 미래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인 비너스를 그린 그림은 수도 없이 많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처럼 많이 회자되는 그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비너스의 자태를 그린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다양한 상징들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보티첼리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화가의 다른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보티첼리의 작품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볼까요?
작품활동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년
비너스의 탄생은 비너스 탄생에 관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 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결혼하여 많은 자식을 낳았는데, 우라노스는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는커녕 자식들이 자기를 밀어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곧 자식들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아들 크로노스는 서둘러 어머니 가이아의 성기 안에 숨게 되었는데,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가 안으로 들어오자 칼로 잘라서 바다에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잘린 우라노스의 성기가 바다에 닿자 하얀 거품이 피어났으며 그 거품 속에서 아름다운 여신 비너스가 탄생하였습니다. 비너스는 그리스어로 아프로디테라고 합니다. 앞으 로스의 뜻이 바로 그리스어의 거품이라고 하니, 신화 속의 이야기가 그대로 비너스의 이름에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으시겠죠?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감상해 볼까요? 그림 왼쪽에는 입으로 바람을 불어 비너스와 조개를 바닷가로 밀어 온 서풍의 신 제피루스가 보이는데요, 함께 있는 여신은 새벽의 여신 오로라입니다. 오른편에서 천을 양손에 든 채로 비너스를 맞이하는 여인은 헤라의 시종인 호라이인데, 호라이는 시간, 그중에서도 봄을 나타내며 그녀의 옷에 봄에 피는 꽃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 중에서는 읽지 않고 단지 보거나 느끼기만 해도 충분한 그림이 있지만, 고전미술은 한 편의 시이고 소설이며 철학이자 과학이기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화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비너스의 탄생 속에 담겨 있는 화가의 메시지를 하나씩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비너스의 나신인데요. 조각 같은 느낌을 주도록 의도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보티첼리는 고대의 베누스 푸디카를 그대로 차용하여 비너스가 손으로 음부를 가리고 부끄러워하는 자세로 묘사하였습니다. 라틴어 푸디카는 현대 영어로 정숙을 뜻하는 pudicity라는 단어의 기원으로서 비너스를 정숙한 여인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각상과 동일한 자세를 취하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비너스는 몸을 S자로 약간 비틀어서 서있는데요, 이 자세는 운동감과 자연스러운 육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고전적 자세인 S-콘트라포스토를 차용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볼 것은 비너스를 상징하는 네 가지의 소품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개껍데기인데요. 서양에서도 동양과 마찬가지로 조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이나 여성의 성기를 상징합니다. 다음 상징은 붉은 장미입니다. 오로라는 뿌리고 있는 장미의 붉은색은 비너스의 탄생이 피와 관련 있음을 나타냅니다. 세 번째 상징은 그림 왼쪽 아래에 있는 고랭이풀인데, 날씬하고 가냘픈 비너스의 육체와 풍성한 머리카락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상징은 호라이 밑에 있는 작은 꽃, 즉 아네모네로, 이 꽃은 미래에 비너스에게 일어날 일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비너스는 나중에 미소년 아도니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비너스의 또 다른 애인인 전쟁의 신 아레스가 질투를 하여 아도니스를 죽이자 그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이 아네모네입니다. 당시 화가들은 이렇게 시간상 함께 있을 수 없는 과거와 미래를 한 화면에 동시에 그리는 기법을 자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너스의 탄생의 비너스의 얼굴에도 화가가 숨겨놓은 상징이 있습니다. 비너스의 얼굴은 작품 네 천사와 여섯 성인과 함께 있는 성모자의 성모 마리아의 얼굴로 사용되는 등 다양한 보티첼리의 그림에 등장하였는데요. 이 여인의 얼굴이 다름 아닌 보티첼리가 짝사랑했던 여인의 모습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가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짝사랑했던 여인 때문이라는 이야 가 전해지고 있다고 하네요.
비너스를 주제로 한 작품을 한 가지 더 만나 볼까요? 포플러 나무 판에 템페라와 유채로 그려진 비너스와 마르스는 베스푸치 가문에서 딸의 혼수품으로 보낼 대형 서랍장에 붙일 그림을 보티첼리에게 부탁하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비너스와 사랑을 나눈 군신 마르스는 피로와 만족감으로 잠에 빠져버리고 말았는데요. 비너스는 이제 막 사랑도 나누었으니 연인 마르스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마르스는 연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자기 바쁘며 비너스는 마르스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여신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챈 개구쟁이 사티로스들은 마르스를 깨우느라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요, 한 녀석은 소라고둥을 시끄럽게 불고, 다른 녀석은 군신 마르스의 상징인 투구를 멋대로 쓰는가 하면, 또 다른 녀석은 아예 마르스의 팔꿈치 밑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심한 마르스는 전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요, 중간에 낀 사티로스는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면서 비너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서랍장에 붙일 그림이었기 때문에 납작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좁은 공간에 그림을 그리려다 보니 의도치 않은 실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비너스의 몸을 보면 한쪽 다리가 보이지 않는데요. 밑으로 깔린 비너스의 오른쪽 다리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보티첼리는 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비너스의 옷 주름을 풍성하게 그려서 오른편 다리 쪽을 가려 버렸다고 합니다. 그림의 대부분은 유화 물감으로 그려졌지만 마르스의 몸과 얼굴은 계란이나 벌꿀 등을 용매로 하여 안료와 섞은 템페라로 그려졌습니다. 보티첼리는 사람의 살색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해 주는 안료가 템페 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유화와 템페라를 섞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다음 작품인 봄은 메디치 가문에서 주문한 보티첼리의 첫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피렌체의 대표적인 시인인 안 젤로 폴리치아노가 쓴 회전목마의 방이라는 시를 그림으로 옮긴 것으로서 고대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신들을 커다란 화면에 그린 그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오른쪽 끝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가면서 감상해야 하는데요, 왼쪽부터 봄의 시작을 님프인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인 플로라로 변하는 것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신들의 드레스를 보면 바람에 서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치마가 흩날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님프가 여신으로 변화하는 각각의 과정, 즉 각각의 장면들을 한 화면에 그렸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감상해 볼까요? 맨 오른쪽의 나무 사이로 나타나 봄의 님프인 클로리스에게 달려들고 있는 남자는 바람의 신 제 피로스입니다. 깜짝 놀란 클로리스는 겁에 질려 도망을 치고 있는데요. 입에서는 비명 대신 꽃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른쪽의 월계수들도 달아나려는 클로리스의 자세처럼 굽어있습니다. 제피로스는 금방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는데, 클로리스와 결혼한 제피로스는 그녀를 꽃과 봄의 여신인 플로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온몸을 꽃으로 장식한 그녀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되었는데요. 플로라가 나타나자 아름 다운 꽃과 생기가 넘치는 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림의 중앙에 서있는 여인은 미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이며, 비너스의 위에서 아들 큐피드가 눈을 가 린 채 화살을 쏘고 있습니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세 여인들은 비너스의 시녀인 삼미신인데, 로마 시대를 비롯하여 고대 회화에 등장하였다가 다시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였으며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 혹은 여인의 나체를 그리기 위한 소재로 화가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삼미신 옆에 서서 나무에 손을 뻗고 있는 남자는 헤르메스입니다. 헤르메스는 상인들의 수호성인이었기 때문에 상업을 중요시 여긴 피렌체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았던 신입니다.
지금 살펴봤던 작품 봄은 주제 면에서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던 종교화에서 벗어나 고대 신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회화의 폭을 넓혔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프레스코화 자유 학예 모임 앞의 젊은 남자는 비너스와 삼미신으로부터 선물을 받는 젊은 여자와 함께 빌라 렘미라고 하는 어느 시골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이 별장의 주인인 조반니 토르나부오니가 자신의 아들 로렌초 토르나부오니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주문했던 그림입니다. 이 작품에서 보티첼리는 고대부터 지식인이 되기 위해 꼭 배워야 하는 일곱 개의 과목, 즉 자유칠과와 왕좌에 앉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그렸습니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난류, 비너스의 탄생 에너지
보티첼리, 자유 학예 모임 앞의 젊은 남자, 1484년경, 프레스코화, 238X284cm, 루브르 박물관
화면 왼쪽의 젊은 남자는 로렌초 토르나부오니이며, 로렌초의 손을 이끌고 있는 여인은 문법을 상징합니다. 그 바로 뒤에서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여인은 수사학을, 전갈을 든 여인은 논리학을 의미하는데요. 논리학을 상징하는 여인이 전갈을 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전갈의 집게발두 개가 변증법적 사고의 양 극점을 상징한다는 데서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수학 공식을 기록한 종이를 왼손에 들고 있는 여인은 산술을 뜻합니다. 지혜의 발치에 앉은 여인은 어깨에 삼각자를 걸치고 있는데, 기하학을 뜻합니다. 바로 아래에는 천구를 든 천문학을 상징하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며 탬버린과 작은 오르간 같은 악기를 든 여인은 음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들고 있는 올리브 나뭇가지는 이 일곱 가지 학문의 조화를 상징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결혼을 앞둔, 혹은 이제 막 결혼을 한 로렌초가 이런 모임에 이끌려 왔다는 것은 로렌초가 지식인임을 과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당시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인체를 해부하며 익힌 지식으로 인물들을 마치 그리스의 조각상처럼 그려냈는데요, 보티첼리 그림의 등장인물들은 몸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무게감도 없이 그려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림 속 인물들은 윤곽선이 유연하고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어서 그 모습이 온화하고 아름답게 남아 있는데요 이것이 비록 정확한 인체비율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보티첼리의 작품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일 것입니다.
보티첼리의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비너스의 탄생일 것입니다. 다른 보티첼리의 작품들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어째서 유독 이 작품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것일까요? 비결은 바로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 비너스의 에너지였습니다. 보티첼리는 색채 사용에 매우 능숙한 화가였는데요.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비너스를 돋보이게 하는 보색 관계의 색조를 사용하였습니다. 빨강과 녹색은 보색 대비가 되는데, 여기서는 빨강의 온건색인 분홍과 채도가 낮은 어두운 녹색을 사용하여 보색의 강조 효과와 부드럽고 우아한 효과를 모두 얻었습니다. 후대 화가들에게 미의 표준으로 큰 영향을 미친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자세히 보면 다소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목이 기형적으로 긴 데다 어깨선의 각도도 가파른데요. 이런 체형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쓰러질 듯 자세도 불안정합니다. 또한 비너스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앞으로 조개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데요. 이상하게도 운동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마치 동영상의 정지 화면 같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비너스의 얼굴이 정면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너스에게 입김을 불고 있는 호라이나 제피루스도 비너스와 똑같이 움직이는 순간을 그렸지만, 비너스 와는 달리 운동감이 느껴집니다, 이 두 인물의 얼굴이 향하는 방향이 비너스에게 입김을 불고 있는 운동 방향과 동일하게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티첼리는 이처럼 작품에 여러 가지 독특한 요소를 가미하여 우리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 모았습니다.
보티첼리가 운동감을 표현한 것은 그림 속 인물들 뿐만이 아닙니다. 보티첼리는 바다 물결을 V자 형태로 타냈는데요. 먼바다에 있는 물결은 작고 규칙적이지만 조개껍데기에 가까이 오면서 뒤틀린 난류 되었습니다. 난류란 유체가 유동하는 형태가 무질서하고 비정상성을 가지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쉽게 말해 공기의 흐름이나 물결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무질서한 것을 말합니다.
생활에서 알기 쉬운 예로는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들 수 있습니다. 수돗물은 떨어지는 물이 적을 때는 직선으로 바닥에 떨어지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을 틀면 갑자기 물길이 사방으로 흐트러지면서 나오게 되죠? 다른 예로 담배연기를 떠올려볼 수 있는데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에서 담배연기가 상승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갑자기 혼돈스러운 패턴을 보여주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작품 비너스의 탄생 속에는 에너지의 과학이 들어 있었는데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로 되돌아가볼까요? 작품 속에 나타나있는 파도는 비너스가 탄생하도록 만들었던 원천이었는데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아버지에 대한 크로노스의 분노가 에너지로 보존되어 파동의 물결을 만들었으며 크로노스가 잘라서 바다에 던진 아버지의 성기인 기둥의 주위에 만들어진 난류가 거품을 형성하여 그 거품 속에서 비너스가 탄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새롭게 생성되거나 사라질 수 없으며 그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곳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의 양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데요. 롤러코스터에서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거나 화약의 화학에너지가 총알의 운동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렇듯 에너지는 언제나 보존되며 전환하는 것이니 결국 크로노스가 일으킨 난류 에너지가 비너스의 탄생 에너지로 전환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방금 알아보신 것처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에너지가 담겨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세상에 나온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으며 관람객뿐만 아니라 비너스를 그리고자 했던 많은 화가들의 교본과 같은 작품으로 남았는데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은 그림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하니, 이 작품이 가진 비너스의 에너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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