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 1450~1516) 생애
여러분은 SF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신비롭고 기괴하고 무서운 괴물들을 보면 오싹하면서도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동시에 이 작품을 만든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경탄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주인공에게는 화가의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애쓰던, 지금으로 보자면 팬(FAN)과 같은 수집가들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화가의 작품 속에 들어있는 그 당시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신비로운 인물들의 모습과 기괴한 세계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비밀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입니다. 보슈는 생애에 관하여 알려진 것이 극히 적은 화가입니다. 보슈의 본명은 제롬 반 아켄인데요. 보슈와 그의 가족이 거의 전 생애를 플랑드르의 헤르토겐보슈에서 살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성이 아켄인 것으로 보았을 때 보슈의 조상들이 독일 아헨 지방 출신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필명인 보슈 또한 고향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요. 고향의 지명을 따서 히에로니무스 보슈를 덴 보슈 또는 엘 보슈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작품활동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화가 보슈
보슈에 대한 기록은 1430년경 기독교의 한 종파인 성모형제회 활동 이후부터 조금씩 나타납니다. 보슈의 할아버지 얀 반 아켄은 다섯 아들을 두었으며 1453년에 사망하였는데, 자녀 중에서 최소한 네 명의 아들이 화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얀 반 아켄의 아들 중 하나였던 안토니우스 반 아켄은 슬하에 3남 1녀의 자식을 두었는데요. 1450년에 두 번째 아들 보슈가 태어났습니다. 보슈의 형제인 구센도 화가였다고 하니, 아켄 집안은 그야말로 명망 높은 화가 집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슈는 1480년경에 알레이트 고예트 반 덴 메르벤이라는 명문 부호의 규수와 결혼하였습니다. 슬하에 자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1516년 8월 9일에는 보슈의 장례식을 치른 기록이 성모 형제회에 남아있습니다. 보슈에 대한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보슈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속하였고 매우 저명한 인물이었다고 전해지며, 보슈가 납부했던 엄청난 세금이 적혀있는 영수증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보슈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편에 속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슈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작품을 그리는 데 있어 생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는데요. 아마도 이이러한 재정적인 여유로움이 보슈가 특이하고 기괴한 주제를 선정할 수 있던 것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보 외에는 보슈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보슈가 어디서 미술을 공부했는지, 또 누구에게 미술을 배웠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으며 그림의 화풍도 당시의 플랑드르 화가 중 누구와도 연관되지 않기 때문에 화가로서 보슈의 삶은 더더욱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보슈가 정확히 몇 점의 작품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림 일곱 점에서 보슈의 서명을 찾을 수 있었고, 서명은 없지만 화풍과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보슈의 작품으로 확실시되는 작품이 마흔 점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보슈가 그림을 그리던 15세기 당대의 유럽에는 흑사병과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종말론이 횡행하였고, 각종 마법사와 이단 종교가 유행하고, 마녀사냥 등의 유혈 폭동도 빈번한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영향 때문인지 보슈는 종교적인 교훈을 담은 그림을 주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속해 있던 특정 종교집단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개인적 의도였는지, 아니면 자신의 신앙생활을 위한 고백적 카타르시스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보슈가 남긴 여러 점의 작품을 모으는 데 성공했는데요. 덕분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은 쾌락의 동산을 비롯해 상당수의 보슈의 작품들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슈는 베일에 쌓였던 화가의 생애만큼 신비롭고 기괴한 작품들을 남겼으며, 보슈가 남긴 그림을 통해 화가의 삶을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기괴한 상상력의 거장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보슈는 공상적이며 기괴한 표현으로 유명했던 화가였습니다. 보슈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들은 종교적인 구원을 주제로 한 밝고 따뜻한 느낌의 종교화를 그렸는데요. 보슈는 구원보다는 심판을 다루었으며 어두운 주제에 맞게 화가의 기괴한 상상력이 작품 속에서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보슈의 기괴한 상상력이 담긴 작품세계로 떠나볼까요? 보슈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반은 남유럽 르네상스의 절정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활동했었던 젊은 라파엘로와 다른 화가들은 조화와 균형미를 통해 인간 세상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하였는데요. 보슈가 바라봤던 세상은 죄악과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으며,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은 한없이 어리석은 존재였습니다. 보슈는 지옥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표현했으며, 기이하고 무서운 악마의 모습을 작품 속에 자주 그렸습니다. 어둡고 기괴한 보슈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보슈를 향해 악마를 만든 자라거나 이교에 심취했다거나 환상을 보는 미친 사람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보슈,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1515~1516년, 패널에 유채,83.5X76.7cm, 겐트 미술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또한 보슈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매장에 이르는 사건들을 묘사하는 그리스도의 수난 장면은 성화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데요. 보슈는 이 중에서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작품의 중앙에는 대각선으로 놓인 커다란 십자가가 보이며, 화면 가득 흉측하고 거무죽죽한 얼굴들이 소리를 지르고 으르렁거리며 화를 내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조금도 빈틈없이 채운 추하고 잔인한 얼굴들을 보다 보면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림 중앙에 예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으며, 왼편에 하늘색 모자를 쓴 여인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땀을 닦아주었다 는 성 베로니카입니다. 베로니카가 들고 있는 수건에는 예수의 얼굴이 찍혀있는데요. 수건 속 예수의 눈이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고있어 그림에 기괴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보슈의 대표작 중 하나인 건초 수레 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걸어왔으며 앞으로도 걸어갈 죄악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성단 제단을 장식하는 3단 제단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요. 실제 예배에 쓰인 것 같지는 않으며 도덕적인 교화를 목적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왼쪽 패널은 위쪽부터 타락 천사의 추방, 이브의 창조, 선악과의 유혹, 낙원에서의 추방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것들은 악마의 탄생과 죄악의 시작을 뜻하는 것입니다. 가운데 패널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대한 건초 마차가 보입니다. 마차를 끌고 있는 것은 동물의 형상을 한 악마인데요. 마차의 앞에서 탐욕 때문에 폭행과 살인을 하는 사람, 건초를 받고 사기 의술을 행하는 돌팔이 의사, 이를 쌓아두 며 태만과 폭식, 육욕의 죄를 범하는 성직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대중들은 마차에 오르거나 건초를 덜어내느라 혈안이 되어있으며, 그 뒤를 종교적 세속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말을 타고 따라오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예수가 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건초 위에서 기도를 하는 천사 외에는 예수의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차와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오른쪽 패널, 곧 지옥입니다. 보슈가 그린 지옥은 대부분의 미술에 서 표현되었던 단순한 불구덩이로의 묘사를 넘어 구체적인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세가 그대로 연장된 것 같은 지옥에서 악마들은 죄인을 하나씩 맡아 고문하고 있습니다. 그림의 한쪽에서는 기존의 건물로는 밀려드는 죄인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듯이 신축 구조물을 짓느라 바쁘게 움직이 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적인 주제는 여러 죄악 중에서도 탐욕의 죄입니다. 봉건 시대의 대표적인 죄악이 교만이었다면, 화폐 경제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13세기 이후에는 탐욕이 악의 근원으로 떠올랐습니다. 건초 수레는 이러한 인간의 탐욕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림 속의 건초는 성서에 기원을 둔 상징물로써 덧없고 숨이 짧은 돈과 물질을 상징하며, 네덜란드에는 세상을 건초 마차에 비유하는 속담과 노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종합해 보자면 덧없이 사라지는 물질의 노예가 된 인간들 의 세상을 건초 마차에 비유한 것입니다.
죽음과 구두쇠는 구두쇠 스크루지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어떤 구두쇠의 최후의 순간으로 데려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작품 속에는 돈이 가득 담긴 금 항아리와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 서로 대비되고 있으며,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보았을 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마와 구두쇠, 해골 등 작품 속의 모든 요소가 비쩍 말라 보이며 악마가 손에 들고 있는 가느다란 창도 앙상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해골의 형상을 한 죽음을 보면 뾰족한 창으로 구두쇠를 찌르려 하고 있습니다. 검은색 모자를 쓰고 있는 구두쇠는 퀭한 눈빛과 공허한 표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그만 창문에서는 빛이 들어오고 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조각이 걸 려있는데요.구두쇠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천사가 가리키는 빛 대신 악마가 내밀고 있는 돈 자루에 손을 뻗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일곱 가지 치명적 죄악과 네 가지 최후의 사건이 그려진 테이블은 일곱 가지 중죄인 분노, 질투, 식탐, 탐욕, 육욕, 자만, 나태를 그린 원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종말의 네 가지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그림의 각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쾌락과 음란을 뜻하는데, 그림에서는 텐트에 있는 여러 쌍의 연인들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그림은 무관심과 나태를 뜻하며, 음식을 잔뜩 먹은 남자가 난로 곁에서 졸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세 번째 그림 은 탐식으로, 아낙네가 식탁으로 내오는 음식을 있는 대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남자들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그림은 탐욕입니다. 판사가 뇌물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다섯 번째 그림은 시기입니다. 거절당한 구혼자가 경쟁자를 질시 어린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그림은 분노를 표현하였는데, 술집 앞에서 두 남자가 싸우고 있는 장면으로 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그림은 자만심입니다. 허영기 있는 숙녀가 새 모자를 감탄하면서 보고 있지만 자기가 보고 있는 거울이 사치스러운 모자를 쓴 악령의 손에 들려 있는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원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4개의 종말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각각의 종말은 임종 순간을 그린 죽음, 그리스도와 천사들 그리고 심판을 받는 사람들을 그린 최후의 심판, 황금빛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천국, 불구덩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악마를 그린 지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보슈는 정가운데에 하나님의 눈을 그려 넣고 그 주위에 "주의하라, 주의하라, 신께서 보고 계신다.라는 글귀를 적었는데요. 하늘에서 누군가 우리를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불쾌하고 감시당하는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시 중세인들에게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한 훌륭한 방책이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화가들은 끊임없이 보슈의 작품을 해석하려고 노력했는데요. 그 해석은 보슈의 기괴한 상상력에 미치지 못했으며 오늘날의 미술사가들도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를 완전히 해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림
보슈, 쾌락의 동산,1500년경, 패널에 유채, 220X390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쾌락의 동산은 앞서 보았던 건초 수레처럼 3단 제단화의 형식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보슈의 작품 중에는 3단 제단화 형태의 작품이 유독 많은데요. 종교적 교훈을 담기에 적당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3단 제단화는 가운데 판을 중심으로 양 옆에 경첩을 달아 왼쪽과 오른쪽 두 개의 판이 중앙으로 덮이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날개를 펼치면 가운데의 큰 그림과 좌우 양쪽의 그림이 연결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판을 덮었을 때 나타나는 그림은 천지창조 제3일의 광경입니다. 평평한 지구는 이제 막 창조된 바다와 육지로 나눠져 형태를 갖추었고, 하늘과 구름이 둥근 구의 형태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덮여있는 두 개의 판을 펼치면 세 개의 그림이 나옵니다. 왼쪽 판은 에덴동산, 가운데 판은 쾌락의 동산, 오른쪽 판은 지옥을 나타냅니다. 과거-현재-미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인데요. 즉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인간들이 쾌락에 빠져 지내면 나중에 지옥의 심판을 받는다는 구성입니다.
쾌락의 동산은 산만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한 작품으로, 초현대적인 뉴에이지 같은 인상을 줍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던 고딕 후기에 해당하는 1500년경에 그려진 것인 데요. 보슈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화가가 에이크, 다 빈치 등임을 생각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그림인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각 그림의 장면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왼쪽 판부터 살펴볼까요?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창조한 완벽한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평화와 기쁨만이 있어야 할 텐데, 그림 아래에는 새가 개구리를 삼키고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며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이제 막 천지창조를 마친 순간인데 타락의 결과인 약육강식이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위에는 하나님이 이브의 손을 잡고 아담과 맺어 주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금단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는 아담 뒤쪽에 빨간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보면 오른쪽에 뱀이 몸을 감고 있는 지혜의 나무가 보입니다. 또한 그림 한가운데는 생명샘이 그려져 있는데요. 보슈는 이 생명샘을 마치 기계장치 같은 형태로 창안하였으며 가운데 구멍을 뚫어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를 그려 넣었습니다.
가운데 판인 쾌락의 동산을 보면 여기저기에 빨간 열매가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중세에서 성행위를 뜻하는 열매를 따고 먹는다는 말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금단의 열매를 손에 들거나 머리에 이거나 먹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모두 쾌락을 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못에는 곧 깨질 것 같은 유리 거품 안에서 서로를 탐하고 있는 연인들이 보이는데, 이것은 플랑드르 속담 중에 쾌락은 유리와 같이 깨지기 쉽다. 를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그림 가운데 호수에서는 타락의 상징인 목욕판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주위를 사람들이 동물을 타고 돌고 있습니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성의 쾌락에 빠지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동물을 탄 사람 중에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머리 위에는 달걀이 올려져 있는 데요. 인간의 쾌락이 달걀과 같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쾌락의 동산에는 보슈가 창안한 독특한 쾌락의 탑이 등장하는데요. 탑의 모습이 매우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독 창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 판의 지옥은 쾌락의 동산과 달리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색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림의 상단부분은 유황불로 덮인 전형적인 지옥을 나타냅니다. 귀 두 개에 칼을 끼운 기괴한 마차가 사람들을 짓밟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쪼개진 거인의 몸통 속에 식탁을 차리고 있는 비이성적이고 초현실적인 구조물 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는 기타처럼 생긴 악기가 보이는데, 악기에 매달려 고통받는 사람들은 쾌락에 빠져 지낸 사람들에게 주는 형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보슈가 창조한 지옥의 식인새가 등장하는데요. 사람을 통째로 먹고 있는 새의 머리에 커다란 냄비가 씌워져 있는 것은 과식한 죄에 대한 형벌을 뜻한다고 합니다.
쾌락의 동산을 비롯한 보슈의 그림 속에는 당시 매우 중요시되던 원근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보슈는 어째서 작품에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원근법이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공간사상을 규격된 평면 위에 묘사적으로 표현하는 회화기법으로, 쉽 게 말해 사람이 보는 시각과 동일하게 그림 속에 거리감을 주어 가깝고 먼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가까 운 것은 크게, 먼 것은 작게 그리는 것이 회화에서의 대표적인 원근법입니다. 원근법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그림기법이지만 사실은 기하학적 이론에 바탕을 둔 수학입니다. 지금부터 다양한 원근법의 종류에 대해 알아볼까요?
투시도법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물체는 크게,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그려 원근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림에서 크게 그려진 집이 작게 그려진 집보 다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투시도법은 선으로만 표현되므로 선 근 법이라고도 하며, 물체의 연장선을 그었을 때 선과 선이 만나는 소 실점을 이용하여 거리감이나 구도를 나타내므로 소실점이 몇 개 있느냐에 따라 그림의 느낌이 좌우됩니다.
겹치기 원근법은 말 그대로 이미지를 겹쳐 그리는 것으로 전후 관계를 분명 히 하여 원근감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노란색 원이 가장 앞에, 파란색 원 이 가장 뒤에 있는 것이 느껴지시죠?마지막으로 공기원근법은 눈과 대상 사이의 공기층의 작용으로 물체가 멀 어짐에 따라 빛끼리 푸름을 더하고 채도가 감소하며 물체윤곽이 희미해진 는 현상에 바탕을 두고 가까운 것은 강하고 선명하게, 먼 것은 흐리고 엷게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원근법의 표현 방법들은 보슈 이전부터 이미 많은 화가들에게서 실 험되고 있었습니다. 파올로 우첼로가 그린 그림에는 원근법이 아주 노골적으로 실험되고 있는데요. 전투 중에 우연히 땅에 떨어진 창들의 방향이 원 근 법의 소실점으로 향하도록 의도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보슈도 당시 이미 보편화되었던 원근법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슈는 왜 원근 법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보슈가 즐겨 사용하였던 3부작 제단화에서 나타나는 과거-현재-미래를 관 통하는 파노라믹한 시선은 곧 세상을 내려다보는 하나님의 시선과 일맥상 통합니다. 즉 시공을 초월하는 신의 시선으로 보면 지상의 어느 곳에도 원근이 있을 수 없다는 화가의 신앙을 표현한 것입니다.
심리학자 융은 보슈의 작품을 보고 괴물의 창조자, 무의식의 발견자라고 극찬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보슈의 작품들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세계를 파격적으로 보여주었으며 후대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는 데요. 세기를 뛰어 넘는 화가의 상상력은 400년이나 후에 일어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까지 영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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