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터 뒤러( Albrecht Drer, 1471. 5. 21 - 1528. 4. 6) 생애
뒤러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헝가리 태생의 금세공사 집안에서 열여덟 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뉘른베르크는 제국 최대 도시인 쾰른 다음가 는 규모의 도시로, 인문주의를 비롯한 학문, 인쇄, 항해와 천문 도구 개발을 중심으로 한 과학 기술,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인 도시였는데요, 뒤러는 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1484년, 뒤러는 자화상의 첫 번째 기록을 세웁니다. 13살 때 실버포인트로 그린 이 자화상은 그 당시의 화가가 그린 최연소 자화상이었습니다. 소년 뒤러는 측면 45도 각도의 상반신을 그렸는데요, 자신의 외형적 특징을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뒤러는 얼굴을 정밀하게 묘사하여 자신의 인상을 표현하였으며 모자 밑으로 삐져나온 곱슬머리를 섬세하게 표현하였는데요, 비록 완벽한 작품은 아니었으나 앞으로 르네상스의 거장이 탄생할 것임을 예고하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뒤러는 아버지를 따라 금세공을 익혔었는데요, 이후 당시 책의 삽화 인쇄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판화에 정진하면서 가업을 잇지 않고, 15세가 되던 1486년에 직업을 화가로 바꾸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후 뒤러는 화가 겸 삽화가인 미하엘 볼게무트의 도제로 들어갔으며 당시의 관습에 따라 도제 수습기간으로 4년을 보내며 제단화를 비롯한 종교화와 책의 삽화, 목판화 등을 배웠습니다. 도제 기간이 끝나자 뒤러는 수업을 마친 도제가 장인이 되기 전에 직인으로서 타 도시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기술을 시험했던 당시의 관례대로 19살이 되던 1490년부터 4년간 독일, 네덜란드, 북부 프랑스,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작품활동
1493년에 뒤러는 초상화의 두 번째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요, 바로 본격적인 회화로 그려진 서양 미술사 최초의 독립 자화상을 그린 것입니다. 지금 보시고 계신 자화상은 성장한 후의 모습인데요, 〈자화상〉속의 뒤러의 표정을 보면 자신감에 차 있는 동시에 약간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옷차림을 볼까요? 뒤러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전해지는데요, 평소 옷 신발 등에 관심이 많아, 의상을 직접 만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뒤러가 입은 옷에서는 고급스러운 옷감과 더불어 뛰어난 패션감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자화상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 은 그림 속의 뒤러가 손에 쥐고 있는 에린지움으로 남편의 정절을 상징하는 식물이라고 합니다. 정절을 상징하는 에린지움을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자화상은 집안끼리 정혼한 약혼자가 있던 뒤러가 자신의 미래 신부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향집으로 보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1495년 고향에 돌아온 뒤러는 뉘른베르크 가문의 출신인 아그네스 프라이와 혼인하였습니다. 뒤러는 아내의 지참금으로 공방을 차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지식과 자극에 대한 갈망으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바로 이 것이 뒤러의 세 번째 기록인데요, 뒤러는 이탈리아로 유학 간 최초의 북유럽 화가였으며 어떤 학자는 이 여행을 북유럽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1495년과 1505년, 두 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뒤러는 인체표현법과 원근법을 익혔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 이론에 위트와 유머, 그리고 선을 이용한 사실적인 표현을 첨가했습니다.
뒤러의 관심은 풍경뿐 아니라 동물과 사람, 기이한 현상 등 자연계 전체에 미쳤는데요, 그 과정에서 토끼나 풀밭을 정밀히 관찰하여 그림을 그리곤 하였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토끼의 털을 보면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토끼의 얼굴에서 보이는 눈동자 또한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오른쪽의 풀을 볼까요? 뒤러는 잔디에 자라 있는 다양한 잡초들도 지나치지 않았으며 뛰어난 작품으로 재탄생 켰습니다.
1498년에 그린 이〈자화상〉은 장갑을 낀 자화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1503년에서 1506년경에 그려진 〈모나리자〉보다 먼저 그려진 작품이 라고 합니다. 이 자화상에서는 한껏 치장한 27살 청년의 자기도 취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에서는 신사적인 귀족의 풍채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뒤러는 이어서 1498년에 목판화 〈요한계시록〉을 발표하였으며 그 후로 동판화 기법을 익혀 1512년에는 3대 동판화 걸작으로 꼽히는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서재에 있는 성인 히에로니무스〉, 〈멜랑콜리아 I〉을 발표하게 됩니다. 500년에 뒤러는 훗날 자신을 가장 대표하게 되는 자화상을 그리게 되는데요, 특히 이 작품에서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눈에 띄며 당시 이 작품을 본 화가 렘브란트와 여러 화가들은 빛의 방향에 따른 정교한 머리카락의 표현에 극찬을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모피를 입고 있는 자화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뒤러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모피는 작품 속의 뒤러를 더욱 위엄 있게 느껴지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모피 털의 질감 또한 풍성하게 살려 작품이 보다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자화상에는 더욱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지금까지 우리는 뒤러의 여러 자화상을 감상하였는데요, 이전의 자화상과 지금 보고 계신 자화상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을 눈치채셨나요? 네 맞습니다. 이 자화상의 특징은 측면의 모습을 그렸던 이전의 자화상과는 달리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당시에는 그림 속의 인물이 정면을 응시하는 자세가 왕이나 그리스도에게만 허용되었다고 하니 뒤러가 가진 화가로서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의 구성을 보면 완벽한 삼각형의 구도를 띄는데요, 자신의 모습을 좌우대칭 정면으로 그려, 비잔틴의 예수 도상을 연상시키며 작품의 창조자로서의 자부심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뒤러가 사망한 후, 뒤러를 향한 숭배는 종교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뒤러의 작품은 성물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뒤러는 1520년에 네덜란드를 여행하는 도중 유화기법을 연구하였는데요, 여행 중 해안에 고래가 떠밀려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내륙에서 살아왔던 호기심 많은 뒤러는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고래를 스케치하러 떠났는데요 착해보니 고래는 이미 파도에 떠밀려 사라진 뒤였으며 오히려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열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고, 자신이 태어났던 뉘른베르크에서 1528년 4월 6일, 57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뒤러는 평생에 걸쳐 수없이 그렸던 자화상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자기 자신이 장인보다는 지식인이기를 원했던 최초의 미술가 중 한 명으로서 '르네상스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습니다. 뒤러는 100점의 유화, 350점의 목판화, 100점의 동판화, 900점에 이르는 드로잉 등으로 인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그 밖에 미술이론서와 인문과학서, 동식물의 형태학적 연구서, 여행기 등 미술 이론 분야에서도 이후의 어떤 화가도 뛰어넘지 못할 업적을 남겨 실로 독일을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학자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화학, 수학, 의학, 신학, 인쇄술의 결정판
뒤러는 1504년도에 화학, 수학, 의학, 신학, 인쇄술을 집대성한 판화 〈아담과 이브〉를 완성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장면을 그린 것으로 신학의 성경 속 이야기에 기초하여 그려진 것입니다. 이 작품은 500년 전의 판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기법을 보이고 있는데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아담과 이브〉를 감상하면서 작품 속의 기법들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담과 이브의 신체 속에는 수학이 숨어 있습니다. 작품 속 아담과 이브는 죄인의 모습보다는 이상적인 인체를 지닌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뒤러의 독실한 신앙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구절에 근거하여 신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아담과 이브는 완벽한 절대미의 이상적인 인체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러한 이유로 뒤러는 아담과 이브의 신체 비율을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에 의해 수학화된 인체의 팔 등신 황금비례에 따라 철저히 맞추었습니다. 얼굴 길이는 신장의 1/10, 상반신의 반은 유두, 다리 길이는 신장의 1/2, 하반신의 반은 무릎, 발 길이는 신장의 1/7, 정도로 하여 인체의 균형미를 강조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아담과 이브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을 함께 관찰해 볼까요? 〈아담과 이브〉의 배경은 에덴동산인데요, 나무와 동물들로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에는 양이 한 마리 위태롭게 서 있으며 나무에는 무새와 뱀이 앉아있네요. 뒤러는 입체감의 표현에 있어 매우 세밀한 음영 표현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나뭇잎과 동물의 털의 표현, 사람의 피부와 뱀의 표피 등 각각 다른 느낌의 질감 표현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이 가능했던 것은 인체비율과 마찬가지로 뒤러의 형태학적 연구의 산물로서 역시 신에 대한 경건한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 아담과 이브, 1504년, 판화, 24.9x19.2cm,
르 베르죄르 미술관각각의 동식물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나무부터 살펴볼까요? 화면을 꽉 메운 에덴동산의 울창한 나무들 중 아담이 쥐고 있는지 위에 지혜와 호기심의 상징인 앵무새가 앉아 있는 이 나무는 생명의 나무이며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뱀이 걸려고, 그 뱀 이 이브를 유혹하여 먹게 한 금단의 열매가 열린 것을 보아 선악과나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 주변에 있는 네 가지 동물은 인간의 네 가지 기질을 상징합니다. 고양이는 담즙질, 토끼는 다혈질, 소는 점액질, 사슴은 우울한 성질을 나타내는데요 이 네 가지 체액은 완벽을 이룬, 신이 창조한 완전한 조화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중세시대 사람들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지닌 순수성이, 이러한 성질을 억압하고 통제해 왔다고 하였는데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이 순수함을 잃게 되자 네 가지 성질이 활성화되면서 이 세상에 악이 연하게 되었다고 여겼습니다.
뒤러는 미술이 단순히 장인의 손재주뿐만 아니라 과학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 업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했습니다. 또한 후배 화가들이 이 연구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도록 측정술과 인체비례에 대한 저서를 훌륭한 독일어 산문으로 저술, 출판하기도 했는데요, 뒤러의 이러한 열정은 후대의 독일 미술뿐만 아니라 미술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원소를 담은 판화
여러분은 우주의 근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의학에서 사람이 네 가지의 사상체질 중 한 가지를 타고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중세 유럽 의학에서도 사람의 체질을 다혈질, 점액질, 담즙질, 우울질의 네 가지로 나눴는데요, 이 네 가지를 나눈 기준이 바로 우주의 근원을 이루는 원소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뒤러는 앞서 감상하셨던 〈아담과 이브〉에서 각각의 체질을 상징하는 고양이, 토끼, 소, 사슴을 작품 속에 그려 넣은 것처럼 의학을 미술에 접목하고자 하는 연구를 하였는데요, 그 결과로 인간의 체질을 담은 작품 〈멜랑꼴리아 I〉이 탄생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멜랑꼴리아 I〉속에 나타난 중세시대 사람들의 우주의 근원에 대한 견해에 대해 알아볼까요?
처음엔 학자마다 우주의 근원에 대해 각자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탈레스는 우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는데 만물은 모두 물로 되어 있고, 땅도 물 위에 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생각을 아낙시만드로스가 이어받아 모든 생명체들은 본래 바다에서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생명체가 바다에서 마른땅으로 나와 살기 시작했고, 인간 역시 다른 바다 생물체에서 진화하여 마른땅에서 살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면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고 보면서 공기는 수축하면 농후해지는데 이것이 바람을 만들고 더 지속되면 물, 그다음엔 땅이 되며 마지막 형태는 암석이라고 생각하였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시칠리아의 의사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물 불 공기 흙의 4원 소설이 정리되었으며, 이후 플라톤과 리스토텔레스의 지지에 의하여 2,000년간이나 서양과학을 지배하게 됩니다. 네 개의 원소가 서로 반응하여 우주 만물을 만든다는 생각은 우주 만물이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원소로 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근대적인 원소설의 시초가 된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인체에 대한 체질론이 활발하게 연구되었는데, 점성술과 결부된 사성론이 널리 받아 드려 졌습니다. 사성론은 각각 물에 해당하는 점액질, 불에 해당하는 담즙질, 공기에 해당하는 다혈질, 흙에 해당하는 우울질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각각의 체질이 띄는 특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담즙질의 특성을 알아볼까요? 담즙질의 체질인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는 성향이 강하고,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가지며 매우 진취적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추진하며 분석적으로 추정하기보다 직관으로 결정합니다. 급하고 화를 잘 내며 매사에 적극적이고 의지가 강합니다. 또한 모든 일을 낙천적으로 생각하여 한번 일을 계획하면 불가능한 상황이어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동의와 상관없이 계속 매진하므로 자기 과신에 빠 지기 쉬우며 모험심이 강하여 어려움에 처할수록 더욱더 고무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점액질입니다. 점액질에 해당하는 기질이 우세한 사람은 자극에 대해 멍하고 둔하여 흥분하거나 격분하는 일이 적고, 활발하지 않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의지와 인내력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대체로 감정의 동요와 변화가 적고 무표정하다고 합니다. 다혈질의 체질을 가진 사람은 어떨까요? 다혈질인 사람은 활동적인 성격이며 토끼로 상징됩니다. 원소로는 공기에 해당하여 높이 오르려는 성질 이 있으며 보티첼리의 〈봄〉이나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듯이 서풍에 의해 봄이 시작되므로 방향은 서쪽이고 점성술로는 목성의 지배를 받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울질에 대해 알아볼까요? 우울질의 체질을 가진 사람은 차고 건조한 가을에 해당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울은 삶의 그림자로 다뤄지고 있으며 인생에서는 이미 쇠약해진 노년기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울질인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요, 당시에는 오히려 창의적인 사람으로 보았으며 역사상 위대한 예술과 학문을 이룬 사람들 중 우울질이 많다고 하여 우울질 예찬론이 생기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뒤러도 이 중 한 사람이었는데요, 이러한 우울질 예찬 사상이 동판화 〈멜랑콜리아 I〉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멜랑콜리아는 라틴어의 멜랑콜리아와 같은 말로 우울이라는 뜻입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중심에 날개를 단여성이 턱을 괴고 앉아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보통 우울질의 체질인 사람을 손으로 턱을 괸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이거나 정신을 놓은 광이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멜랑콜리아 I〉속 여인의 모습은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턱을 괸 채로 아무 행동도 하고 있지 않지만 게으름뱅이가 아님을 예상할 수 있는데요, 여인의 날카롭게 빛나는 두 눈이 오히려 무언가에 몰두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여인의 옆에는 아기천사가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 중입니다. 건물 벽에는 사다리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다변체와 구, 그리고 굶주린 개 한마디도 보이네요, 그림 아래에는 톱 대패 망치 등의 각종 도구들이 널려 있습니다. 우울질인 사람은 측량과 건축의 행성인 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사색에 열중한다고 하는데요, 따라서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목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이유로 여인의 머리 위에 목성을 나타내는 4 방진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방진이란 가로 세로 사방 대각선으로 어느 행으로 더해도 같은 값이 되도록 숫자를 하나씩 써넣은 격자인데요, 4 방진이면 44로서 1부터 16까지의 숫자로 만든 마방진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의 상단 왼편에는 바다와 그 위로 커다란 아치를 그린 무지개, 사방으로 빛을 뿜는 혜성이 존재하며 이 작품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인 듯 박쥐의 펼쳐진 날개 위로 '멜랑콜리아 I'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온갖 잡다한 도구들에 둘러싸인 천사의 형상을 한 인물은 세계의 질서를 과학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술가 혹은 지식인의 초상이며, 뒤러는 자신의 천재적 능력을 우울과 결합시키고자 하였음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에 의해 창조된 우주의 오묘한 질서와 미의 법칙에 대해서는 더 이 상 알 수 없기 때문에 깊은 우울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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